[자연과학]‘우리 몸…’ 인체의 조직 폭력배를 공개수배 한다

  • 입력 2004년 4월 2일 17시 15분


우리 몸에는 100조개의 세포가 있지만 이 중 고작 10조개만 우리 자신의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좋든 싫든 기생 생물들과 몸의 세포들이 함께 사는 생물학적 존재다. 젖산균(바닥의 초록색 원형)이 여성의 질벽에서 대장균(붉은색·왼쪽)과 장내구균(진한 파란색·오른쪽)의 활동을 억제하고 있다.사진제공 휘슬러
우리 몸에는 100조개의 세포가 있지만 이 중 고작 10조개만 우리 자신의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좋든 싫든 기생 생물들과 몸의 세포들이 함께 사는 생물학적 존재다. 젖산균(바닥의 초록색 원형)이 여성의 질벽에서 대장균(붉은색·왼쪽)과 장내구균(진한 파란색·오른쪽)의 활동을 억제하고 있다.사진제공 휘슬러
◇우리 몸 기생생물에 대한 관찰노트/로버트 버크만 지음 이은주 옮김/237쪽 1만5000원 휘슬러

인체공화국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인체공화국 출입국관리소 직원입니다. 저희 공화국에는 모두 100조개의 세포가 살고 있지만 그중 정식 시민권자는 10%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저희 출입국관리소의 임무는 90%의 비시민권자를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중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순한 거주자와 소수의 포악한 범죄자를 가려내는 일이지요.

여러분이 손에 쥐고 있는 안내책자에는 저희가 쫓는 지명수배범의 명단이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자폭형 테러리스트도 있습니다만 저희의 특별관리대상은 주로 조폭형 강력범죄자입니다. 이들은 절지동물 중심의 ‘외부 거주형’과 기생충 중심의 ‘내부 거주형’, 그리고 최근에서야 마각이 드러난 ‘특수 침투형’으로 구분할 수 있어요.

‘외부 거주형’ 중 가장 화려한 녀석은 벼룩입니다. 2500평의 들판에 270마리의 토끼벼룩을 풀어놓고 토끼 세 마리를 놓아둔 실험을 한 일이 있는데 모든 벼룩이 한 마리도 빠짐없이 토끼의 몸에서 발견됐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반경 10만km의 들판에서 시속 640km로 질주하는 트럭 위로 뛰어오르는 능력이지요. 그러나 ‘외부 거주형’의 최고수는 단연 빈대입니다. 빈대는 밤사이 눈치 채지 못하게 피를 빨아먹으면서 숙주인 사람이 가려워 긁는 일이 없도록 항생화학물질까지 주사하는 완전범죄자입니다. 집안 먼지와 야생동물의 털에 사는 진드기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천식과 옴 같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합니다.

‘내부 거주형’의 선두주자는 회충입니다. 지구상의 가장 성공적 기생생물로 꼽히는 회충은 세계 65억명의 ‘인체공화국’ 중 최소 12억5000명의 공화국에 침투해 있는 걸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회충은 잘록창자에 정착한 뒤엔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인체공화국의 식량을 축낼 뿐이란 점에서 말 그대로 ‘기생충적 존재’에 불과해요. 이에 반해 보통 돼지고기를 통해 감염되는 선모충은 창자벽을 뚫고 나가 간과 폐까지 구멍 내고 돌아다니는 폭도지요. 가장 끔찍한 놈은 메디나충인데 물벼룩 속에 유충으로 있다가 인체로 침투하면 창자벽은 물론이고 다리의 피하조직까지 뚫고 갑니다. 특히 피부표면에 도달하면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물집이 잡히고 메디나충이 고개를 내미는데, 이를 한번에 잡아 뺄 경우 치명적인 급성쇼크를 일으켜요. 이 때문에 은색막대를 이용해 매일 조금씩 천천히 빼내야하는데, 고대에는 이런 치료방식이 워낙 뿌리박혀 의학의 상징인 카두케우스 막대를 휘감고 올라가는 뱀이 실은 메디나충이라는 소름끼치는 해석도 등장했습니다.

(사진위)촌충의 머리부분. 숙주의 내장에 머리를 고정시켜 체인 형태로 성장한다.

(사진아래)사람의 가는 머리카락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머릿니의 확대 모습.

‘특수 침투형’ 중 최악의 파괴범은 열원충입니다. 한때 지구상에 존재했던 인체공화국들의 절반을 붕괴시킨 주범으로 지금도 한해 120만∼300만명의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말라리아의 배후조종자입니다. 라틴어로 ‘나쁜 공기’를 뜻하는 말라리아가 공기 탓이 아니라 열원충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은 19세기 말에야 규명됐지요. 위궤양의 범인인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은 1980년대에야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최근에는 심장병 발병의 용의자로 폐렴클라미디아라는 세균이 지목되고 있습니다.

안내책자에는 인체공화국의 3D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비시민권자들의 활약도 소개돼 있습니다. 입 냄새는 혀 뒤쪽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이 입안에 들어온 단백질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휘발성유황화합물(VSC)이 원인입니다. 정상인이면 하루 평균 11차례 끼는 방귀의 악취 또한 장내에 서식하는 세균들이 유황이 함유된 아미노산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VSC를 내놓기 때문이지요. 겨드랑이 털에 사는 코리네박테륨은 털의 피지와 땀을 원료로 땀내와 함께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까지 만들어냅니다.

마지막으로 안내책자를 건성 읽다 덮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화장실보다 부엌싱크대가 더 심각하게 세균에 오염돼 있다는 생활정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유머감각 풍부한 문장, 악질 수배범들의 대형 브로마이드 얼굴사진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테니까요.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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