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그들은 왜…’ 눈사태 속 60초가 生을 가르쳤다

  • 입력 2004년 4월 2일 17시 26분


◇그들은 왜 히말라야로 갔는가/릭 리지웨이 지음 선우중옥 역/332쪽 9800원 화산문화

저자는 1978년 악명 높은 K2봉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고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등반한 세계적 알피니스트다. 또한 킬리만자로 등반기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등반기 ‘킬리만자로의 그늘’을 써서 1998년 뉴욕 타임스 선정 10대 베스트셀러에 오른 문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2001년에 내놓은 이 작품의 첫머리는 성석제의 단편소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연상시킨다.

1980년 10월 14일 그는 히말라야 고봉 중 하나인 중국 쓰촨성의 민야 콘카(7556m)를 오르던 도중 눈사태를 만난다. 리지웨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지만 함께 산에 오르던 친구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기자인 조너선 라이트는 허리까지 눈에 파묻힌 채 숨진다. 그때 자신의 생존과 라이트의 죽음이 교차한 60초는 리지웨이의 일생에서 가장 긴 시간으로 기억된다.

“인공호흡을 할 때마다 그의 가슴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그의 머리를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갑자기 파래졌다. 마치 그의 몸에서 무엇인가 갑자기 ‘휙’ 하고 빠져나간 것 같더니 그의 얼굴도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는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친구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당시 생후 16개월밖에 되지 않던 라이트의 딸 아시아(히말라야를 품은 대륙에 대한 애정으로 지은 이름)의 후견인이 된다. 아시아는 열아홉살 되던 해 ‘아빠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저자는 친구의 딸을 데리고 히말라야에 묻힌 친구를 찾아 떠난다.

저자 릭 리지웨이(작은 사진의 왼쪽)와 라이트의 딸 아시아.사진제공 화산문화

두 사람은 훌륭한 셰르파들이 많이 나와 ‘셰르파의 고향’으로 불리는 쿰부에서 출발, 티베트인이 신성시하는 카일라스 순례길을 통과해 생전의 라이트가 등반을 계획했던 세계적 희귀 동식물 서식보호지역 창탕고원을 거쳐 한발 한발 라이트의 무덤에 다가간다.

그 여정은 히말라야와 티베트불교에 심취했던 라이트의 짧고 순수했던 삶에 대한 추억과 열아홉살 때부터 모험으로 점철된 리지웨이 자신의 삶에 대한 회상이 교차하는 십자로이기도 하다.

라이트는 불같은 성정을 지녔었지만 셰르파를 통해 겸손을 배운 뒤로는 화내는 법이 없었고, 히말라야에 직면한 뒤에는 명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젊은 리지웨이는 에베레스트와 K2, 칸첸중가 등 세계 3대 최고봉을 등정하고 남극대륙 최고봉 빈슨 매시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를 오르며 삶과 죽음의 고민을 거듭했다.

두 사람이 90일간의 여정 끝에 도달한 해발 7000m 고지 라이트의 돌무덤. 리지웨이는 무덤에 남아 있는 친구의 머리카락을 다시 어루만지며 그의 영혼이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친구의 딸, 아시아가 저절로 풍장(風葬)된 아버지의 무덤을 새로 만드는 것을 도우며 친구의 일기장 마지막 구절을 되새긴다.

“나는 매일 매일을 내 생애 마지막 하루인 것처럼 소중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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