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정치 정상화 유권자 손에 달려 ▼
총선이라 하면 대개 인물과 정책 대결로 치러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 구도는 탄핵 정국으로부터 작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흐름은 ‘탄핵심판론’과 ‘인물심판론’이 맞서는 형국이다. 한편에서는 탄핵소추 가결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인물 중심의 투표를 호소하고 있다.
문제는 과연 탄핵심판론과 인물심판론이 상반된 것이냐에 있다.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탄핵 결정에의 관련 여부는 인물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의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국민 다수의 시선에는 이번 탄핵 사태가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비쳤으며, 이에 대한 책임 여부가 후보 선택 기준의 하나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정당정치의 정상화에 있다. 정당 본래의 기능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을 대변해 국정에 반영하는 데 있다. 그러기에 정당은 무엇보다 전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자기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부정부패와 당리당략에 얼룩져 온 게 정당들의 자화상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정당 정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책의 실종이다.
정책은 정당의 존재 이유다. 우리 정당정치가 저발전 상태인 이유 중의 하나도 정책을 보고 정당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지역정서나 감정에 의해 투표가 이뤄져 온 데에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어느 이슈든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대안들이 민주적으로 경쟁할 때 생산적인 정책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지 혐오가 증대해 온 것은 우리 정당들이 정책개발에 우선하기보다 지역주의에 안주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는 지역주의의 망령으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정책 평가의 핵심은 ‘콘텐츠’다. 각 정당이 개별 사안에 대해 어떤 정책을 제시하는지, 그 정책 대안들에 타당성, 개혁성, 실현가능성 등이 어떻게 담겨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상황과 조건이 바뀌었는데도 과거 정책들을 재탕하거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이 든 세대는 고령화 정책을, 젊은 세대는 일자리 창출 정책을, 여성들은 양성평등 정책을 각각 꼼꼼히 비교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공약 타당-개혁성 꼼꼼히 따져야 ▼
주목할 것은 이번 총선부터는 제2투표인 정당투표가 실시된다는 점이다. 정당투표가 갖는 장점의 하나는 지역적인 이슈와 이익을 떠나 전국적인 관심과 어젠다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정책전문가들을 의회에 진출시켜 우리 정치를 업그레이드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각 정당의 정책과 비례대표 후보들을 세심히 비교해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기존 16대 국회의 부패상과 그에 따른 의원 대규모 구속 사태가 웅변해준다. 정치가 사회의 중심이라면, 우리 정치는 20세기적 낡은 틀과 과감히 결별하고 새로운 사회를 주도할 수 있는 21세기의 새로운 틀을 열어나가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유권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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