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오명철/마지막 라운드

  • 입력 2004년 4월 12일 18시 28분


골프가 잘 안 되는 이유는 366가지라고 한다. 일년 365일 매일 한 가지씩 이유를 대도 한 가지가 더 있을 정도로 핑계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연습을 안 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나왔더니”와 같이 단순한 이유에서부터 “클럽을 바꿔서” “새 공으로 쳤더니”와 같은 ‘장비(裝備) 교체론’에 “요 며칠 과음했더니” “전날 상가에 다녀와서” “아침에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더니”와 같은 ‘컨디션 부재론’ 등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이상하게 안 된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12일 끝난 올해 마스터스의 또 다른 화제는 노장 골퍼 아널드 파머(75)의 ‘마지막 라운드’였다. 50년 연속 마스터스에 출전해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하고 12차례 톱10에 들었던 파머는 2라운드 합계 24오버 파 168타로 93명 가운데 92위를 차지하며 컷오프로 마스터스 고별전을 장식했다. 그는 1955년 처음 마스터스에 참가한 이래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출전해 대회 역사의 3분의 2를 지켜 본 산증인이다.

▷노장 파머가 대회장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마지막 라운딩하는 동안 수천명의 팬이 18홀 내내 그의 뒤를 따르며 기립박수로 경의와 애정을 표시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75세의 나이는 그에게 단지 숫자였을 뿐”이라고 AP통신은 적었다. 팬들이 환호를 보낼 때마다 특유의 매력적인 윙크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제스처로 답례를 표시한 파머는 마지막 라운드를 마친 뒤 “모든 것은 끝났다. 끝났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를 위해 끝마쳐졌다는 얘기는 해야 할 때”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스터스에서 네 차례에 걸쳐 우승할 동안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타이거 우즈 같은 선수와 경기를 하고, 1983년 공동 36위를 한 이래 단 한번도 컷을 통과하지 못하면서도 대회에 계속 출전한 파머의 심경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단 한번도 자신의 부진을 변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생출전권을 갖고 있었던 그는 “경쟁력이 없는 선수는 마스터스에 출전하지 않는 것이 좋다”며 대회의 권위를 위해 스스로 무대에서 내려와 전설 속으로 사라졌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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