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기론 부풀리기’로 표 얻자는 건가

  • 입력 2004년 4월 13일 18시 26분


17대 총선 막바지 분위기가 ‘어떤 위기를 피할 것이냐’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 개탄스럽다.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위기론을 내세워 마치 유권자를 ‘협박’하는 듯한 양상이다. 이는 각 당의 공약과 후보를 비교하며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유권자를 배신하는 정치공세가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사퇴하고 단식에 돌입한 정동영 의장은 “40년을 지배해 온 의회권력의 교체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고,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의 염원도 무산될 위기에 있다”며 “탄핵세력의 국회 장악을 막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거대여당이 출현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렇게 되면 앞으로 4년간 또 나라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어느 당을 선택해도 위기를 맞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열린우리당이 위기를 강조하며 총선을 탄핵에 결부시키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게 되어 있는 헌법 절차를 무시하자는 발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총선 후유증까지 걱정된다. 정 의장이 ‘노인 폄훼’ 발언 때문에 사퇴한다고 했다면 책임지는 모습이 오히려 깨끗했을 것이다.

지난 4년간 원내 제1당으로서 국민을 실망시킨 한나라당이 거대여당을 위기의 출발로 단정하는 것 또한 무책임한 일이다. 한나라당이 커지면 안정이고 여당이 커지면 불안이라는 논리에 무슨 설득력이 있는가.

공공연히 위기를 부추기는 정당에 흔쾌히 표를 던질 유권자는 없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상대 당에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기보다는 위기극복의 청사진을 보이는 것이 옳은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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