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희/물갈이

  • 입력 2004년 4월 18일 19시 08분


어항의 물을 갈 때는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지 않는다는 게 상식이다. 적당하게 박테리아가 살아있는 물이어야 물고기가 살기 쾌적하기 때문이다. 수돗물은 하루쯤 놔 둬 소독약 성분이 날아간 뒤에 써야 한다. 반면 가습기의 물을 갈 때는 물통 속까지 깨끗이 닦은 후 새 물을 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새 물을 담아도 더러운 습기를 내뿜는다. 여행지에서 물을 갈아 마시면 배탈이 나기도 하는데 이건 적응이 덜된 탓이다. 현지인들이 멀쩡한 것은 몸에 항체가 있기 때문이다. 물도 신토불이(身土不二)다.

▷조직을 운영하는 데도 물갈이는 중요하다.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서는 기존 직원의 역할이, 조직의 활력을 위해서는 새 사람이 필요하다. 그 둘 사이의 적절한 배합에서 조직의 효율이 결정된다. 선수 교체는 팀플레이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 포인트다. 벤치에서 힘을 비축한 선수가 제때 투입돼 팀 전체를 살린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전쟁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원병의 규모나 지원 시기를 잘못 계산하면 전투도, 전쟁도 망하고 만다.

▷총선을 전후해 언론에 자주 등장한 단어가 ‘물갈이’다. 오죽하면 ‘물갈이총선연대’라는 단체가 생기고 대장금 노래인 ‘오나라’를 개사한 ‘물갈이송’이 다 나왔을까. ‘바꿔라 바꿔라 다 바꿔라/부패한 정치인 다 바꿔라/이번이 아니면 못 바꾸니/무능한 정치인 바꿔보세’로 나가는 물갈이송 덕분인지 299명 중에서 187명이 초선의원으로 구성됐다. 그중 신생 정당 소속 의원 수가 가장 많다. 이만하면 가히 물갈이다.

▷원래 있던 물보다 새 물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에서 유권자의 뜻을 읽을 수 있다. 그 정도의 비율이면 아무리 더러운 물도 2 대 1로 희석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러나 있던 물의 3분의 1 정도는 그냥 놔둔 걸 보면 급격하게 변한 환경 속에서 국민이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 같다. 단호함과 세심함이 절묘하게 섞인 민심이다. 문제는 새 물의 수질(水質)이다. 새 것은 확실한데, 먹어서 탈이 나지 않을지는 아직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에서 탄핵문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산적한 현안들이 곧 이에 대한 해답을 줄 것 같다.

박성희 객원논설위원·이화여대 교수·언론학

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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