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한국 축구감독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

  • 입력 2004년 4월 19일 18시 38분


한국축구대표팀감독을 전격 사임한 쿠엘류. 동아일보 자료사진
한국축구대표팀감독을 전격 사임한 쿠엘류. 동아일보 자료사진
‘카리스마형이냐, 자율형이냐’.

한국축구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과연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올 7월 2004아시안컵까지 임기를 보장받았던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이 19일 전격 사퇴함에 따라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차기 감독을 외국인중에서 뽑기로 하고 선임 작업에 착수했다.

김진국 기술위원장이 밝힌 외국인 감독 선임의 전제 조건은 ‘히딩크의 장점과 쿠엘류의 단점을 모두 고려해서 결정하겠다’는 것. 이는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을 거친 지도자들의 특성을 면밀히 검토해 최적의 인물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크게 ‘카리스마형’과 ‘자율형’ ‘관리형’의 3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카리스마형 지도자인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은 축구인들이 꼽는 역대 최고의 지도자. 2002월드컵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는 선수장악력은 물론 전술 운용면에서도 최고의 경지를 선보였다는 평가다.

지난해 1월 쿠엘류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프랑스출신의 브뤼노 메추 전 세네갈 대표팀 감독이 쿠엘류의 후임으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것도 카리스마형 지도자란 게 가장 큰 이유.

그러나 정작 외국인 감독들의 전형적인 모습은 자율형에 가깝다. 91년 올림픽대표팀 총감독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독일)과 94미국월드컵이후 한국대표팀을 맡은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러시아), 쿠엘류 감독이 모두 자율 방임형 지도자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코칭스태프나 선수, 협회를 장악하지 못한 채 불화를 겪다 중도하차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런 점에서 메추 감독과 함께 차기 물망에 오르고 있는 세뇰 귀네슈 전 터키 대표팀 감독은 국내 정서상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다. 2002월드컵에서 터키를 3위로 이끈 귀네슈는 올 2월 약체 라트비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2004유럽축구선수권 본선 진출에 실패한 뒤 중도 퇴진했다.

또 내국인 출신으로 각각 94미국월드컵과 98프랑스월드컵 당시 사령탑을 맡았던 김호 감독과 차범근 감독은 관리형 지도자로 꼽히지만 이들도 역시 기대 밖의 성적으로 감독생명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한편 신임 감독 선임과 관련 또 하나의 변수는 우선협상권을 가진 히딩크 감독의 거취. 김진국 위원장은 “아인트호벤과의 계약 내용을 먼저 파악해야겠지만 다시 맡기기는 힘든 것 아니냐”고 밝혀 히딩크 감독의 복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역대 국가대표팀 감독을 비교해 보니
감독재임기간성적지도 스타일
김호92년8월∼94년7월20승19무9패관리형
비쇼베츠94년7월∼96년7월13승7무6패자율형
차범근97년1월∼98년6월22승11무9패관리형
히딩크01년1월∼02년6월14승12무12패카리스마형
쿠엘류03년2월∼04년4월9승3무6패자율형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박성화 감독대행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의 전격 사퇴로 당장 이달 28일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둔 국가대표팀은 박성화(49) 수석코치 대행체제로 운영된다. 새 외국인 감독 선임 문제가 난항을 겪을 경우 오는 7월 아시안컵 본선까지 박 감독대행 체제가 이어질 수도 있다.

박 감독 대행은 “당장 대표팀에 큰 변화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부담이 크다”며 “모든 것을 축구협회와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대표팀 운영과 관련해 쿠엘류 감독과 견해를 같이 하는 것은 선수 차출의 어려움. 올림픽과 월드컵 예선이 겹치면서 선수 차출 부담이 커진 각 구단의 반발로 선수들을 불러 충분한 훈련을 하는데 곤란을 겪었다는 것. 하지만 쿠엘류 감독이 밝힌 협회의 지원 부족 문제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다른 입장을 보였다,

박 감독대행은 “쿠엘류 감독이 사퇴를 결정하기까지 코치들과 상의한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며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만나 협조와 조언을 들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너무 성급히 자른건 아닌지…” 日축구기자가 본 쿠엘류 사태

쿠엘류 감독의 사임은 사실상의 해임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쿠엘류 감독의 취임은 한국 축구에 있어서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본다. 히딩크 감독 아래 한국은 응축된 조직력을 만들어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 이제부터는 개인의 타개력과 창조력의 중요성을 주입하자는 것이 쿠엘류 감독의 기본 노선이었다. ‘최후까지 남는 것은 조직전술이 아니라 개인의 힘’이라는 남미 축구와 궤를 같이하는 포르투갈인다운 발상으로. 세계 랭킹이 더 높아지려면 불가결한 개념이다. 그는 히딩크 축구에 플러스알파를 더하기 위한 적임자였다.

이러한 타입의 지도자는 자잘한 약속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이 재치를 발휘하는 것, 자유로운 발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연습시 전술을 가르치기보다 선수끼리 서로의 의도를 피부로 느껴 감각적으로 팀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원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에 히딩크 감독보다 연습시간이 더 필요했다. 기자회견에서 쿠엘류 감독이 ‘14개월중 훈련시간은 72시간 밖에 없었다. 축구에서 목적을 이루려면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은 그런 뜻이 내포된 것이다.

한국인들에겐 몰디브와의 무승부가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베트남 몰디브를 상대로 한 독일 월드컵 1차예선에서 한국이 패퇴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좀 더 기다릴 수 없었을까. 7월부터 아시안컵을 위한 합숙에는 유럽파와 J리그파도 합류해 연습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이 대회 성적을 본 뒤에 결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눈앞의 성적이 아니라 최종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장기적 전망이 중요하다는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최종목표로 친선시합 성적에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대처했던 히딩크 감독한테 배우지 않았던가.

일본 대표팀의 지코 감독도 개인의 힘을 중시하는 축구를 표방해 쿠엘류 감독과 마찬가지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축구가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하고 있는 필자에게 쿠엘류 감독의 사임은 유감스러운 뉴스다.

나카코지 도르(中小路 徹) 아사히신문 스포츠부 축구전문기자

▼전문가들이 본 한국축구 감독론…“외국인 감독 영입을” vs “토종감독이 더 낫다”

▽조광래 서울 FC 감독=성인대표팀 운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23세 이하의 올림픽이나 19세 이하의 청소년대표팀은 육성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성인대표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쿠엘류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 동안 지원이 올림픽대표팀에 쏠린 감이 없지 않다. 대표팀 지원 체계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문선 SBS 해설위원=새 감독 영입을 논하기에 앞서 왜 쿠엘류 감독이 실패했는지를 분석하고 향후 대표팀 운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 쿠엘류 감독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2006독일월드컵을 목표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안종복 인천 유나이티드 단장=2002월드컵 4강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너무 쉽게 외국인 감독을 선발한 것 같다.

기술위원회에서 충분한 검토 후에 지도자를 선발했어야 했다. 그리고 일단 감독을 맡겼으면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계약 기간까지는 보장해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박종환 대구 FC 감독=한국축구가 부진한 원인을 쿠엘류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미뤄서는 안 된다. 무턱대고 외국인 지도자에게만 의존하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중도에 감독이 사퇴하면 한국축구에 끼치는 손실이 크다. 성적이 나쁘다고 감독을 도중하차시키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

▽허정무 용인축구센터장=쿠엘류 감독이 자신의 전술을 펼치기에는 훈련 기간이 너무 짧았다. 쿠엘류 감독도 한국축구를 빠른 시일 내에 파악하고 대비하지 못했다. 국내 지도자 보다 외국 감독이 세계축구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월드컵 이후 산만해진 선수들을 다스릴 리더십을 갖춘 지도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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