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무너진 ‘천막당사’서 거듭나려면…

  • 입력 2004년 4월 27일 18시 47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나라당 천막 당사의 대표실 천장이 27일 내려앉았다.

26일부터 내린 비로 컨테이너 지붕에 빗물이 고이는 바람에 나무판자를 이어붙인 천장이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운데 부분에 금이 가면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당직자들은 난감해 했다. 당장 이날 오후 1시반 중국 티베트자치구 당서기가 대표실로 박근혜(朴槿惠) 대표를 방문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실무자들은 부랴부랴 회동 장소를 국회 대표실로 옮기는 소동을 벌였다.

한 당직자는 내려앉은 천장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한나라당이 완전히 망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냐”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애처로운 모습이 국민에게 알려지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표정이었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국민적 공분(公憤)에 대해 반성하고 부패와의 단절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현장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천막 당사로 이사하고 회초리를 맞는 아들의 모습을 TV광고로 내보내는 등 “뼈를 깎으며 반성하고 있다”는 모습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121석의 의석을 얻어 원내 제1야당이 됐다. 어찌됐든 국민은 열린우리당에 불과 30여석 모자라는 지지를 보냄으로써 한나라당의 ‘반성’을 일단 믿어준 셈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보여주기 위한 이미지 정치는 이제 끝내고 내실 있는 정책 수립과 건전한 야당으로서의 제 모습 갖추기로 국민의 신뢰에 보답할 때다.

당장 29, 30일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 열린다. 벌써부터 정체성과 노선, 지도체제를 놓고 한나라당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린다. 체제 정비를 위해 이 같은 논의는 필요하고 불협화음도 때로는 불가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노선이나 지도체제를 둘러싼 논의가 ‘밥그릇’ 챙기기 싸움으로 끝나고, 국민을 또 다시 관객으로 내몰 경우 국민은 무너진 대표실 천장처럼 한나라당을 구제불능의 당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박민혁 정치부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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