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 모으기 운동까지 벌어지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맨홀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사고 위험이 큽니다. 훔쳐 가신 분들 빨리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기 바랍니다.”
MBC ‘뉴스데스크’의 주말 진행을 맡은 최일구 앵커(44)의 파격적인 방송 진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뉴스 진행 도중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내뱉는 최 앵커의 스타일에 대해 시청자들은 “속 시원하다” “뉴스가 쇼냐”며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 기업, 정계는 최 앵커의 표적
최 앵커는 “평범한 시청자들이 공감할 만한 범위 내에서 개인적 견해가 들어간 멘트를 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공분(公憤)을 살 만한 힘있는 대상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25일 방송에서는 개인의 직종이나 병력을 감안해 맞춤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뉴스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봄철이면 직장별로 건강검진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피 뽑고 소변검사하고, 뭐 이 정도 아닙니까. 그래서 개인별 맞춤형 건강검진이 절실한데 돈이 많이 듭니다. 그래도 회사 사장들이 결심하면 뭐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말이죠.”
총선 전후로는 정치인이 도마에 올랐다. 17일 방송에서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에게 정쟁을 일삼지 말라는 뜻에서 한 “머슴이 싸움하면…”이라는 비유는 현재까지도 시청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질책도 단골 메뉴다. 지난달 폭설피해 때는 새마을호 탈선사고 소식을 전하며 “도로공사가 일 못하면 철도청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질타했다.
17일 고속철도 호남선 구간의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고속철도 사장님, 인명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없이 빨리 달리기만 하면 뭐합니까.”
○엇갈리는 반응
주말 뉴스가 끝나면 MBC 인터넷 사이트에는 “코미디보다 재미있어요” “최일구씨 짱이에요” 등 시청자들의 글이 쇄도한다.
“옳은 소리, 하고 싶은 말 시원하게 한다.”(박현숙)
“앵커는 보도에서 자신의 철학을 가미해야 한다. 시대정신을 담아 비평하는 것도 앵커가 할 일이다.”(박창배)
반면 반대 의견들도 적지 않다.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앵커가 개인의 감정을 표출해도 되나. 뉴스는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다.”(이종훈)
“대중 영합적 취미를 즐기다 보면 진리를 보는 눈이 어두워진다.”(박정국)
정대철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뉴스의 기본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해 시청자들에게 판단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 앵커의 판단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앵커가 뉴스 프로그램 전반을 지휘하는 외국과 달리 기자들의 취재내용을 전달하는 국내 앵커시스템에서 앵커의 논평은 자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했던 권재홍씨는 1999년 9월 앵커 멘트로 한 변호사에 대해 “사람답지 못한 사람” “한심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당해 올 1월 서울고법으로부터 “방송사와 앵커는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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