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길거리에서 인상적인 성모마리아 상을 본 적이 있다. 골동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였는데 하얀 두건과 하늘색 긴치마 밖으로 검은 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검은 성모마리아라니. 천사의 옆구리에 새까만 날개를 달아준 것보다 더 낯설었다. 어색하며, 어딘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다. 색깔이 주는 놀라움에 대해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벌들의 비밀생활’을 관통하는 주된 이미지는 바로 그 검은 성모마리아 상이다.
밤이면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는 한 소녀가 있다. 수많은 벌들이 벽 갈라진 틈에서 쏟아져 나와 온 방안을 빙빙 날아다닌다. 어둠 속에서 벌들을 지켜보는 열네 살 소녀 릴리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배경은 1964년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릴리는 낮에는 주로 난폭하고 매정한 아버지를 피해 과수원에서 숨어 지낸다.
엄마 없는 릴리에게는 심성이 곧고 따뜻한 흑인 유모 로살린이 있다. 로살린은 태어나서 처음 투표하러 가던 길에 백인 남자들로부터 구타당하고 감금된다. 결국 릴리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로살린은 백인 남자들의 폭력을 피해 함께 도망친다. 그들은 릴리 어머니의 유품에서 발견한 흑인 성모상에 적혀 있는 곳, ‘티뷰론’으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벌을 치며 살아가는 세 흑인 자매가 흑인 성모상을 모시고 ‘마리아의 딸’이라는 모임을 꾸려 나가고 있다.
이 소설에는 인종 갈등을 그린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미덕들이 있다. 그들이 벌들의 세계를 보면서 벌들과 인간, 여왕벌과 흑인 성모상을 비교하면서 깨닫는 부분이 그렇다.
어머니에 대한 릴리의 그리움은 결국 ‘자기 안의 모성성(母性性)’으로 확산되어 간다. 곧 여성소설로서의 면모를 갖는 것이다. 보편적인 신앙이 민중적, 토속적으로 바뀌어 그들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고 그들을 치유하며, 그들에게 영성을 가르치는 종교성으로 발전하는 것이나 인종 차별에 대한 진정한 저항은 결국 사랑과 포용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드러내는 사회의식은 자칫 한 백인 소녀의 성장기 무용담으로 읽힐 수 있는 이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흑인 공동체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릴리는 숲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며 푸념한다. “내 것이나 그녀의 것이나 소변은 소변일 뿐”이라고.
‘벌들의 비밀생활’은 두 여인이 처한 1964년 미국 사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04년 오늘, 단일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서로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기보다는 ‘우리’라는 이념 안에 숨으려고 하는 모든 인간의 문제다. 생각해 보면 성모마리아는 일찍이 백인도 흑인도 아닌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이었다. 흑인 성모마리아 상에 대한 생경함은 없어졌지만 또 다른 이유로 나는 그때 만큼 많이도 불편하다. 내 안의 ‘당혹감’을, 너무 익숙해져 버린 그 편견을 지나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 혜 란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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