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개인주의적 아카니즘’… 아나키즘의 새 흐름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김은석 지음/304쪽 1만2000원 우물이 있는 집

한국사회에서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곤 하는 아나키즘은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등 주로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통해 소개돼 왔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또 다른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매우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아나키즘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는가, 혹은 개체적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나뉜다.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인간이 공동체 내에서 비로소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인간의 자아 성취는 집단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적 생활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본다.

나아가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인간 사회가 대립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는 이유를 개인주의와 사유재산제로 보고 공동체적 연대를 통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위해 사회혁명을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의 보장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제주대 교수·서양사)는 그동안 국내에 별로 소개되지 않았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특징과 그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저자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의 시각에서 보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역시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연대성에 토대를 둔 사회라 할지라도 공동선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는 불가피하게 강제적 간섭과 규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 생산수단의 사회화 역시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욕구를 가로막고 창의성과 성취욕을 무력화한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의 미래사회는 결국 통제와 억압 안에서 평등을 수립하려는 음모 이상일 수 없으며 국가주의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아나키즘 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개한다. 개인의 독립과 개성을 강조하며 이성에 의한 점진적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적 아나키즘, 사회를 이기심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막스 슈티르너의 이기적 아나키즘, 개인의 이익에 기초한 자유방임적 경쟁이야말로 개인의 성취동기를 자극하는 가장 효율적 요인이라고 보는 벤저민 터커의 자유방임적 아나키즘 등이다.

저자는 “사회주의 몰락 후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은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반성의 대상이 됐으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여전히 새로운 사회건설의 이념적 단서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아나키즘이 주장하는 탈집중화와 자유지상주의는 환경운동, 반핵운동, 여성운동, 지역자치운동 등 현재 주류로 진입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경향과 맥이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시장자유주의와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