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은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귀중함을 모르고 살 때가 많다. 그래서 어버이날을 맞이해 쓰는 편지에는 어색함이 서두를 장식한다. 그러나 편지를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담기고 물기가 밴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렇지 못한 가족을 둔 아이들도 있다. 해마다 맞는 가정의 달일수록 더욱 추운 아이들이 있다. 화창한 봄날인 5월에 그들은 상대적인 한기를 느낀다. 책 속에서 만나는 가족도 그랬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며 읽는 책’으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 책이 결손가정의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의사소통 불가의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나오는가에 관한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호주 작가가 쓴 열네 살 소녀 마리나에 관한 성장소설이다. 마리나는 부모가 갑작스레 이혼한 데다 아빠가 실수로 던진 화공약품에 맞아 얼굴에 화상을 입는다. 그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마리나. 그에겐 린델 선생님과 다정한 친구가 있어서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간다.
그러나 이 책의 매력은 위의 줄거리로 간추릴 수 없는 마음의 행로에 있다. 다른 빛깔로 다가오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보면서 마리나는 발을 넣었다 뺐다, 마음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아빠를 미워해야 한다는 생각과 실제로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마음의 확인이 마리나가 쓴 일기장에 빼곡히 적혀 있다. 이 책은 고스란히 마리나의 일기장이기도 하다. 제목 ‘할 말이 많아요’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말문을 터뜨린 문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은 후 ‘쓸 말이 많아요’라는 제목을 달아 독후감을 제출한 학생이 있었다. 때로는 마리나의 행동에 감탄하기도 하고, 때로는 선배처럼 주인공의 행동을 나무라는 대목이 이어진 글이었다. 마리나의 친구처럼 조곤조곤 조언을 늘어 놓은 독후감을 읽으며, 책 속의 마리나에게 깊이 공감하고 진심으로 가슴 아파했던 마음이 읽혔다. 이렇듯 아이들은 같은 시간을 통과한다는 것에서 일차적인 일체감을 느끼며 마음의 문을 열고 책을 대한다. 일기 형식으로 이어진 이 책을 읽으며 아이들도 자신이 감추고 싶었던 것과 토로하고 싶었던 것을 확인한다.
이 책을 유창하게 말을 늘어놓는 친구에게도 권하고 싶고, 마음의 문을 꼭 닫고 혼자 지내는 친구에게도 권하고 싶다. 독서를 통해 어눌한 친구를 기다려 주는 법도 배우고, 당장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주는 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부모님과 함께 읽으면, 혹은 부모님이 먼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서 미 선(서울 구룡중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 모임 회원)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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