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神託·Oracle)이란 신(神)이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사람들한테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작가들은 소설을 쓰면서 자기가 등장시킨 캐릭터들의 운명을 슬며시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곤 한다. 이른바 ‘복선(伏線)’ 같은 것이다. 이 점에서 작가는 자기가 ‘기용’한 캐릭터들 위에 군림하는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빗댈 수 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지난해 선보인 ‘신탁의 밤’(원제 ‘Oracle Night’)은 작가의 이 같은 위치를 소설 속에 활용한 것이다. 오스터는 이 소설에서 작가 시드니 오어를 ‘기용’했는데 오어는 작품 속에서 닉 보언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몰타의 매’에는 건축 공사장에서 떨어져 내린 돌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어는 자신의 주인공 보언을 통해 이 이야기를 발전시켜 보기로 한 것이다.
(유부남인 보언은 낙석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후 삶과 죽음이 참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것이구나 하는 회의에 젖는다. 그러다가 로사 라이트먼이라는 아가씨의 전화 응답기에 사랑을 고백하는 메시지를 남겨 둔다. 그러나 이때는 휴대전화가 없던 1982년인 데다, 보언은 객지를 떠돌던 터라 자기가 곧 만날 택시 운전사의 전화번호를 연락처로 남겨 둔다.)
여기까지 소설을 써놓은 오어는 아내에게서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자기도 잘 아는 중진 작가의 아기가 아닌가 의심한다. 이 중진 작가는 오래잖아 숨지고 만다.
오어는 자기 소설에서 택시 운전사를 ‘숨지게 만들어 놓은’ 터라 자꾸만 이 운전사와 중진 작가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숨지기 전에 라이트먼과 만났던 것으로 쓸 경우 아내가 임신한 아기는 진짜 중진 작가의 아기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면 재미있긴 한데, 아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곁가지 이야기지만 보언은 소설 속에서 또 다른 소설 ‘신탁의 밤’을 읽고 있다. 그가 읽고 있는 이 소설의 내용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주인공이 닥쳐올 끔찍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짜 작가’ 오스터가 쓴 소설 속에 여러 소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지극히 단순하게 시작했던 소설이 미궁과 같은 구조로 얽혀 들면서 징조와 현실, 현재와 미래, 원인과 결과란 무엇인가 하는 운명의 본질에 관한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복잡한 구성은 이 소설의 단점이자 강점이다. 일단 작가 오스터는 자신이 소설 속에 ‘기용’한 오어를 실제 인물처럼 읽히도록 하는 데 실효를 거둔 것 같다. 오어를 ‘나’로 등장시킨 데다, 소설과 실제 현실을 천연덕스럽게 연결시키는 장문의 각주를 달아 놓은 덕분이다. 이런 ‘포스트모던한 장난’을 치면서 혹시 오스터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자기도 누군가가 만든 소설(혹은 가상현실) 속의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 자기도 누군가가 펼쳐 놓은 거대한 체스판 위에 서 있는 ‘말(馬)’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면서 잠시 틈을 내 자기 역시 체스를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권기태기자 kkt@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