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이상훈 파란만장 야구인생 접다

  • 입력 2004년 6월 3일 01시 19분


SK ‘야생마’ 이상훈(33)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이상훈은 1일 저녁 광주에서 조범현 감독과 만나 은퇴의사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상훈은 “그동안 팀에 보탬이 못 됐다. 최근 팀이 어려워진 것도 내 잘못인 것 같고 올해 성적도 안 좋아 죄송스러웠다. SK에서 잘 해줬는데 보답을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감독은 2일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관두면 안 된다.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유니폼을 벗어야 할 것 아니냐’고 설득했지만 이미 결심이 굳어 마음을 돌리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구단은 2일 이상훈의 은퇴를 발표했다.

그동안 이상훈은 추락한 팀 성적과 개인성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올해 LG에서 SK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뒤 의욕적으로 훈련했지만 뚜껑을 열자 3패 3세이브, 평균자책 5.14로 마무리투수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달 25일엔 조 감독과의 면담에서 “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뒤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군 훈련에는 참가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 이상훈은 고민 끝에 1일 광주로 조 감독을 찾아가 자신의 결정을 알렸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이상훈의 야구인생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는 고려대 시절 자주 팀 숙소를 이탈해 ‘빠삐용’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반항아.

하지만 고(故) 최남수 고려대 전 감독의 보살핌으로 야구에 집중하게 된 뒤 불같은 강속구로 고려대 4학년 때 성균관대전에서 14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고 93년 당시 신인 최고계약금인 1억8800만원에 LG 유니폼을 입었다.

LG에서 선발과 마무리투수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뒤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98년 진출)와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2000년 진출)에서 뛰었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한·미·일 프로야구를 섭렵한 선수가 이상훈이다.

2002년 미국에서 LG로 돌아온 이상훈은 올해 호주 전지훈련을 앞두고 기타 치는 문제로 신임 이순철 감독과 마찰을 일으켜 SK로 트레이드됐다.

▼이상훈은?▼

▽생년월일=1971년 3월11일

▽출신교=서울고-고려대

▽별명=빠삐용, 야생마, 갈깃머리, 삼손

▽프로 주요 경력

93년 당시 신인 최고계약금인 1 억8800만원에 LG 입단

94,95년 2년 연속 다승왕, 97년 구원왕

98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 건스 입단

2000년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 드삭스 입단

2002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마이너리그 계약

2002년 귀국 후 LG 재입단

2004년 SK로 트레이드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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