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최근 여야 의원 22명이 ‘파병반대 국민행동’이란 시민단체가 주최한 조찬 모임에 참석해 이달 임시국회에 ‘파병추진 중단 및 원점 재검토 권고 결의안’을 제출키로 했다. 참석의원들은 “이라크전쟁은 명분 없는 것이며 현재의 이라크 상황이 평화재건 지원이라는 파병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상태”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일부의원 재검토 요구에 우려▼
이들이 정부가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얻어 추진해 온 이라크 파병 방침에 승복하지 않고 기필코 무산시키겠다는 비타협적 저항적 자세로 일관한다면 우려할 만한 일이다. 더욱이 그런 행동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아마추어리즘은 곤란하다.
추가파병은 이라크 국민과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점령정책에 협력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반테러 국제연대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또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와 현지국의 요청에 부응해 평화정착과 재건지원을 위해 파병하는 것이다. 충분히 명분 있는 선택이다. 따라서 전쟁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파병을 거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나자프 지역에서 시아파 민병대와 미군의 대치국면이 지속되며 산발적인 적대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파병시 우리 국민에 대한 테러위협이 증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파병 철회를 정당화하는 사유는 될 수 없다. 이라크 치안유지 및 경제 재건의 필요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은 외교적 신뢰에 속하는 문제다. 한미동맹 강화 및 군사협력 차원에서 이미 양국간에 합의된 사항이다. 소요 장비와 물자를 마련하고 장병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중이다. 파병지의 최종 확정만 남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방적으로 파병 결정을 번복한다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 온 한미간의 전통적 우의와 신뢰를 심대하게 훼손할 것이다.
작금에 이라크 포로학대 사건으로 미군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때 우리 군이 ‘평화의 사절’로서 미군이 해내지 못한 평화재건 지원 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한다면 한-이라크 관계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함은 물론 한국의 이미지 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추가 파병에 따라 기대되는 경제적 실익도 결코 적지 않다. 더불어 파병을 통해 한반도 밖에서의 군사력 운용, 특히 비대칭적 저강도 분쟁에 대한 대응 경험을 축적하는 것도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반면 파병 재검토 및 철회는 국가정책 결정의 권위와 정부의 리더십 훼손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만일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밀리는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정부가 외교안보정책을 책임지고 추진할 수 없고 보-혁 갈등의 골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한미동맹은 외세의존이 아니라 안보협력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자세가 동맹에게 요구되는 덕목 제1조다. 우리가 ‘열린 자주’를 추구하고 ‘협력적 자주국방’의 기조 위에 대등한 동맹관계를 만들어 가려면 이라크 파병에 더욱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기회주의는 ‘왕따’되는 지름길▼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외교안보 문제에서 ‘우왕좌왕’은 있을 수 없다. 장기적 안목과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 17대 국회는 이라크 파병을 다시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 국가 이익과 동맹의 공고화란 관점에서 접근해 소모적인 논쟁과 정책적 혼선을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대의에 따른 파병은 압력에 대한 굴종이 아니다. 국가간의 약속을 깨는 여반장(如反掌)의 기회주의적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파병은 미래를 위한 확실한 투자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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