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영/재보선 민의는 경제다

  • 입력 2004년 6월 7일 18시 50분


5일 치러진 지방선거 재·보궐선거는 다시 한번 국민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실감나게 했다. 17대 총선이 끝난 지 불과 50일 만에 실시된 이번 선거에서 국민은 여당과 대통령에 대해 호된 질책의 회초리를 들었다. 여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탄핵사태의 종결이다.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대통령 탄핵사태가 종결되면서 국민은 정상적인 상태에서 여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통해 여당은 총선에서의 지지를 결코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생 외면 ‘그들만의 잔치’ 심판▼

둘째, 바뀌지 않는 대통령의 언행이다.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보수언론이 개혁 방해를 위해 부추기는 것쯤으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을 뭐든지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쯤으로 이해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추구하는 대통령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경제위기에 쪼들리고 있는 국민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셋째, 과거의 여당을 닮아 가는 듯한 여당의 모습이다. 총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여권은 20년 장기집권 구상을 내비쳤다. 차기 대선을 위한 경력 관리라는 미명하에 여당 지도부의 장관 임용이 기정사실화됐다. 심지어 어느 부처의 장관을 맡을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정치개혁을 부르짖은 여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했지만 사람과 정당이 바뀐 것 외에 과거에 비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

넷째, 지역개발을 내세워 환심을 사려는 정부의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 2002년 대선에서 최대의 히트작은 충청권으로 행정수도를 이전한다는 공약이었다. 충청권에서 압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공약의 위력은 이번 재·보선에서도 입증되었지만 이 효과가 과연 언제까지 갈지는 의문이다. 수도 이전 후보지가 결정되면 충청권 내에서도 이탈표가 생길 것이고 실제로 수도 이전을 위한 준비가 진행될수록 현재의 수도권을 포함한 충청권 이외 지역의 반대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지방균형발전을 내세워 여타 지방을 겨냥한 개발 방침을 계속 내놓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재원조달 등의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온다. ‘분산’ 위주의 이런 정책이 ‘혁신주도형 경제건설’을 통해 연 6%의 경제성장을 달성하겠다는 대통령의 구상과 정합성을 갖는지도 의심스럽다.

재·보선 결과 여당의 참패는 이처럼 여당 스스로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다. 이는 야당의 승리가 야당이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야당은 지금껏 개혁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은 철저한 개혁을 부르짖으며 개혁특위를 가동한 적이 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민주당과 결별해 열린우리당을 만들자마자 개혁을 중단했다. 여당의 분열에 따른 3당 구도에서 총선 승리는 불을 보는 듯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17대 총선에서 나타났다.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개혁을 위한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총선 후 지금까지 보여주는 모습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하다. 지도체제 내분이나 소속 의원들의 당론 투표를 고집하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민생 살리기를 그렇게 강조한 한나라당이 17대 국회에서 과연 무엇을 보여줄지 국민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남의 탓 말고 민심 읽어야▼

여야는 이제 상대방의 잘못으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누가 더 민심을 정확히 읽고 효과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승패가 결정돼야 한다. 노 대통령은 국회 개원연설에서 경제 살리기를 강조했다. 야당도 이에 동의한 만큼 서로가 남의 탓만 하지 말고 극도의 위기에 처한 민생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이번 재·보선에 나타난 민심이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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