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범죄’ 안된다]<上>불량식품의 천국

  • 입력 2004년 6월 10일 18시 23분


“다른 식품인들 안전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주부 조은숙씨(36·서울 광진구 구의동)는 “시중에서 팔리는 식품 모두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앞으로 가공식품을 사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불량 만두 파동에 대한 과잉 반응일까.

그렇지 않다. 실제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발암물질이 든 공업용 착색료로 고운 빛깔을 낸 고춧가루를 서울과 경기 일대에 10만2400kg이나 판 일당 6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는 성인 2만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 이 고춧가루를 장기간 먹으면 구토나 안면마비의 위험이 있다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말이다.

이 뿐만 아니다. 광견병에 걸린 개로 만든 보신탕, 납이 들어간 수입 꽃게, 볼트를 넣은 수입 참조기, 쇳가루를 넣은 고춧가루, 공업용 소금으로 만든 젓갈, 공업용 본드를 쓴 떡시루, 공업용 이산화염소로 소독된 횟감용 한치….

‘만두사건’을 계기로 ‘불량식품의 천국’인 우리 현실과 무사태평한 당국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이 분출하고 있다.

▽당국의 실효성 없는 단속=불량 만두소를 만들다 적발된 으뜸식품은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경기 파주시의 단속에 세 차례나 적발됐지만 모두 1200여만원의 과징금을 낸 뒤 영업을 계속해 14억3070만원어치의 제품을 생산 판매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불량식품 업자를 단속하더라도 이들은 단속을 비웃는다.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도 1일 8만원(연 매출 3000만원 미만 업소의 경우)의 과징금만 내면 영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량식품의 제조 판매를 막으려면 불량식품 생산자의 영업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히 제재해 시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YMCA 시민중계실 김희경 간사는 “문제의 식품을 폐기했는지에 대한 점검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시스템 개혁이 없으면 계속 반복될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광견병과 일본 뇌염에 감염된 개를 보신탕용으로 팔아 구속 기소됐던 도매업자 Y씨와 모 동물연구소 대표 K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법원은 이들이 3년간 개에게 전염병 백신을 주사한 뒤 이 개를 식용으로 판 고의성을 인정하면서도 너그러운 판결을 내렸다.

식품위생법 위반 사범은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00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원이 처리한 전체 식품위생법 사범 1741건 가운데 불과 2.1%인 36건만이 1심에서 실형을 받았다. 나머지는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식품법 위반 사범에게 대부분 실형을 선고하는 등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경찰청 수사 관계자는 “죄질이 나쁜 식품법 위반 사범에게 실형을 선고하도록 아예 벌금형 규정을 삭제해야 식품업자들이 법을 비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현희(全賢姬) 변호사는 “불량 식품을 만들어 파는 것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대량 살상행위”라며 “법원과 검찰이 식품 범죄를 중죄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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