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세계아마선수권 우승 이강욱 7단 ‘프로의 꿈’ 이뤄

  • 입력 2004년 6월 13일 17시 22분


이강욱 7단은 “프로 입단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바둑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이강욱 7단은 “프로 입단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 만큼 마음을 가다듬고 바둑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이젠 프로의 세계에서 이창호 9단과 대국하고 싶습니다.”

10일 일본 오카야마 현 구라시키 시에서 끝난 25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서 8전 전승으로 우승한 이강욱 아마 7단(22)이 한국기원 입단 규정에 따라 200번째 프로 기사가 된다. 1999년에는 유재성 2단이 같은 대회에서 우승해 입단한 바 있다.

이 아마 7단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바둑을 접한 이래 간절하게 원했던 프로기사의 꿈이 현실화됐지만 막상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이다.

“이번 대회에선 대진운도 좋았고 프로기사인 한상렬 5단, 김승준 8단을 비롯해 홍맑은샘, 윤춘호 아마 7단이 대회 내내 동행해 사기를 북돋워 준 게 큰 힘이 됐습니다.”

김승준 8단은 “이 7단이 여덟 차례 대국을 두면서 한번도 불리한 적이 없었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7단은 이번 대회에 대비해 지난해 말부터 허장회 9단의 바둑도장에서 기량을 가다듬었다. 서봉수 9단, 김영환 이상훈 7단, 양건 김영삼 6단, 김만수 5단 등 프로기사들이 기꺼이 스파링 파트너가 돼줬다. 최규병 9단은 대회 직전 이 7단을 따로 만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약한 상대라고 얕보지 마라”고 조언도 해줬다.

입단까지 이 7단의 바둑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강원 주문진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에 있는 권갑룡 7단 바둑도장으로 유학을 왔다. 그는 중학교를 자퇴하며 바둑에 ‘올인’했다. 그러나 입단은 쉽지 않았다. 1999년 입단대회에서 김효곤 3단과의 입단결정 대국을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너무 조심하다가 역전패 당했고, 2000년 입단대회에선 상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이후 그는 만 18세가 지나면 한국기원 연구생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규정에 따라 별 대책 없이 그곳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입단을 못한 게 내 인생에서 마이너스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둑 밖에 모르던 내가 훌륭한 아마추어 기사들을 많이 만나면서 인생과 사고의 폭을 넓혔고 바둑 실력도 늘릴 수 있었어요.”

지난해 그는 삼성화재배 아마예선전, 학초배, 아마대왕전 등 3개 대회에서 우승해 2000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두텁고 꼼꼼한 기풍이 돋보인다는 평.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마음이 여리고 소심해 승부사적 기질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평가해보면 지금 입단하는 후배들보다 내 실력이 센 것 같지는 않습니다. 10대 기사들이 주름잡는 프로 세계에서 나이도 많은 편이죠. 하지만 한 걸음씩 걸어가렵니다. 불가능해 보이던 입단도 했는데 더 이상 불가능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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