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지신탁제’ 선명성 경쟁해서야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7분


정부가 지난달 입법예고한 ‘고위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의 일부 내용을 고쳐 최종안을 내놓았다. 신탁 하한액을 낮추고 17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에 대해서는 경과규정을 뒀지만 적지 않은 문제점을 손질하지 않은 채로다.

열린우리당은 적용대상을 정부안보다 넓히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은 신탁재산을 강제 처분하지 않는 대신 신탁대상을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과 채권으로 확대하고, 17대 국회의원까지 시행대상에 포함시키는 의원입법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마치 선명성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양상이다.

백지신탁제는 고위공직자들이 직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재산을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이 제도의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가 너무 의욕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우선 정부안은 직계 존비속이 주식신탁을 거부해도 본인이 신탁을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임·징계를 하도록 하고, 국회의원의 경우 국회윤리위원회에 제명을 요구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부모나 자녀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의 공직 진출을 사실상 가로막아 공무담임권과 사유재산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에 대해서만 이를 적용하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지나치다. 백지신탁제 대상 공직자와 재산 범위를 확대하려는 여야의 방안도 비용과 실효성을 함께 따져 봐야 한다.

백지신탁제가 벌써부터 위헌시비를 불러일으켜서는 입법단계에서 저항에 부닥칠 뿐 아니라 시행 초기단계에서 문제점만 잔뜩 노출시켜 제도 자체를 사문화(死文化)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치권과 여야는 명분에 치우친 선명성 경쟁보다 이 제도를 내실화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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