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마찬가지로 관련행사가 열리기는 했지만 갈수록 관심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아직 후진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미완의 항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항쟁 이후 국민의 손으로 네 명의 대통령을 뽑았으나 여전히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역사가 진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6·10항쟁은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 이어 연세대 이한열군 사망사건이 촉발제가 됐다.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았을 때부터 광주 망월동 묘지(현재 국립 5·18묘지)에 묻히기까지의 전 과정을 곁에서 취재했던 기자로서는 6월만 되면 그때의 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리에 재생된다.
며칠 밤을 새워 중환자실을 지켰던 일, 장례식 날 서울시청 앞에서 지냈던 노제, 도심을 가득 메웠던 100만명의 인파, ‘5·18’ 유족과의 갈등 때문에 몸싸움 끝에 밤 12시가 다 돼서야 겨우 안식처를 찾았던 시신, 매일 온몸이 최루탄과 땀으로 뒤범벅됐지만 가슴 벅찼던 기억들….
이 사건을 시민항쟁으로 승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연세대 학생회장으로 장례 실무준비를 총지휘했던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이다.
당시 기자가 놀랐던 것은 그가 가진 유연성과 포용력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운동권 학생의 경우 기성세대와 언론은 배척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몰려든 기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내부 반발을 무마해가며 미소 띤 얼굴로 인내심을 갖고 설득을 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 모든 과정을 세세히 회고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희생과 노력이 대중성의 확보로 이어졌고, 항쟁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그가 정계에 입문해 깨끗하고, 겸손하고, 진솔한 정치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정치인으로 커줬으면 하는 바람도 갖게 됐다. 이제 국회의원에 당선돼 의정활동을 시작한 우 의원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몇 가지 당부하고 싶다.
우 의원을 포함한 열린우리당 17대 총선 당선자와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6·10항쟁 때나 지금이나 이 노래가 담고 있는 뜻이 변할 리는 없다.
그러나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목을 놓아 불렀던 때와는 달리 청와대에서 합창했던 ‘임’은 ‘그들만의 임’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이제 ‘386세대’의 대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집권당 국회의원으로서 6·10항쟁 때 보여줬던 ‘포용’과 ‘설득’, 그리고 ‘통합’을 더욱 절실한 가치로 삼아야 한다.
또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환경이 변하긴 했지만 정치의 속성상 ‘교도소 담장’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도덕성을 내세웠던 운동권 출신 선배 정치인들이 초심을 잊고 권력에 취해 비틀댔던 전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줄을 서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당 지도부도 아닌 국민뿐이다. 운동권이 누렸던 나름의 ‘기득권’도 이제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는 다른 386세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최영묵 사회 1부 차장 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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