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지붕 밑의 바이올린’…납북 아버지의 향기

  • 입력 2004년 6월 25일 17시 29분


◇지붕 밑의 바이올린/김채원 지음/386쪽 9000원 현대문학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견 여성 작가 김채원씨(58)가 최근 단편 11편을 묶은 새 창작집 ‘지붕 밑의 바이올린’을 펴냈다. 이 중 북한에서의 4박5일간의 체류기와 납북 아버지에 대한 추억 등을 다룬 ‘바다의 거울’은 소설이 아닌 작가의 실화다.

김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2002년 우연히 국내 기독교 단체를 따라 평양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평양에서 겪은 일들과 느낀 점들을 소설적인 구성없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며 “다들 그냥 이 작품을 소설로 읽고 개인사적인 측면으로는 주목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심지어 이번에 창작집을 펴낸 출판사조차도 이 작품을 수록하면서 단편소설로 알고 있었을 정도다.

8·15 광복 후 반민특위법으로 다섯 달간 옥살이를 한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추억이며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된 후 인민군을 피해 두 딸을 데리고 방공호로 피신한 어머니,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제때 볼거리를 치료하지 못해 얼굴과 목에 흉터가 생긴 언니 등 ‘바다의 거울’에서 언급된 이야기는 ‘문인(文人)집안’으로 유명한 그의 가족들이 모두 실제 겪은 일인 것이다.

잘 알려졌듯 그의 아버지는 ‘국경의 밤’으로 유명한 납북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이며 어머니는 1990년에 작고한 소설가 최정희, 언니는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 김지원씨다.

글 속에서 언니는 아란(娥蘭)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김씨는 “아란은 언니의 어릴 적 이름이고 내 이름은 항란(姮蘭)이었다”며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었으나 운명에 좋지 않다고 해 학교 들어갈 무렵 둘 다 지금 이름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글 곳곳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아버지를 그리워는 하였어도 그 구체성에 대해서 언제나 막연하였다. 아버지를 만난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폭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의 이 길을 그 옛날 아버지가 지나갔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어린 날 아버지가 아란아 하고 불렀을 때 어린 딸이 수줍게 고개 숙이고 서 있던 금강석 같았던 그 시간-어린 딸을 향해 부르던 아버지의 그 음성….’

‘바다의 거울’ 외에도 이번 창작집 수록작들은 작가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가을의 환(幻)’을 내놓음으로써 ‘환 시리즈’를 14년 만에 매듭지은 것을 제외한다면 이번 창작집은 ‘달의 몰락’(1995년) 이후 작가가 9년 만에 내놓은 소설집이다.

문학평론가 문혜원씨는 “선명하고 고운 문체보다 전쟁 이산가족 등 사회적 주제가 많이 부각됐다는 것이 예전 작품들과 뚜렷이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평했다.

내년이면 등단 30주년. 그의 이름 앞에는 ‘작가’ 외에 ‘화가’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게 될 듯하다.

대학(이화여대 회화과) 졸업 이후 그림에서 손을 떼고 있던 그는 “한동안 소설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했다.

“글을 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림을 놓아본 적이 없어요. 언젠가는 하리라 생각했는데 최근 미국에 다녀오면서 이제 내 방향이 조금 바뀌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풍(畵風)을 묻자 그는 “딱히 말한다면 반(半)추상”이라고 말했다. “미리 약속해 놓은 ‘빚(원고)’을 갚는 대로 완전히 그림에만 들러붙어 있겠다”는 그는 “글과 그림은 방식만 다를 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