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서구 중심의 의사소통 이론을 극복하고 한국적 의사소통이론을 창조적으로 모색한 연구서다.
서구의 의사소통이론은 근본적으로 ‘모든 대상은 언어 또는 기호로 치환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이는 모든 기의(記意·의미)는 기표(記標·언어기호)로 대체될 수 있다는 구조주의 기호학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이성과 감성,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 아름다움과 추함 등의 이항(二項)대립적 사유체계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말하면 상극의 논리다.
이처럼 객관성과 명료성을 위해 차이를 중시하는 로고스 중심의 의사소통관은 구텐베르크의 금속인쇄술을 타고 급속히 세계인의 의식을 지배해 갔다. 라디오와 TV 등 대중매체는 이를 더욱 확산시켰다. 이런 대중매체는 주로 소수의 송신자와 다수의 수신자로 구성되는 선형적 다중의사소통의 기능 확장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러나 케이블과 인터넷을 통해 여러 매체가 결합하는 복합매체의 탄생은 의사소통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상호작용성을 확장시켰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의사소통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것은 선형적 명료성에서 총체적 즉각성으로,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서 융합으로, 실재와 비실재의 구분에서 그 경계의 소멸로 설명된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동양적 의사소통관과 일맥상통하는 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지 않고 또 언어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그것이 담긴 비언어적 총체성에 충실한 상생의 세계관이다.
도가(道家)의 언어도단(言語道斷·언어는 도를 해칠 수 있다), 불가(佛家)의 불립문자(不立文字·도는 언어로 전해질 수 없다), 유가(儒家)의 입상진의(立像盡意·형상을 통해 뜻을 전한다)는 바로 그런 의사소통관을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도가와 불가의 의사소통관을 예(藝)로 표상하고 유가의 의사소통관을 예(禮)로 압축한다. 예(藝)가 기표보다 기의를 중시하는 언어 최소주의적 입장이라면 예(禮)는 모든 기표를 기의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언행일치의 언어관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현실은 기표들만이 과잉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藝)의 의사소통관과 정반대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예(禮)의 의사소통관을 보다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