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을 다 짓고 나서 준공 승인을 받으려는데 공장 부지가 8개의 용도지역이나 용도지구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규제의 원인은 이른바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다는 명목이었다.
박씨는 3개월 동안 건설교통부와 환경부 농림부 등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민원실 등을 뛰어다니며 준공 승인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야 했다.
정부가 25일 발표한 토지규제 합리화 방안은 박씨처럼 땅위에 집이나 건물을 지으려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땅에 대한 규제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정리해 기업들의 투자활동을 촉진하고 토지 이용자들의 시간과 비용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토지규제 왜 정리하나=정부 각 부처는 그동안 필요에 따라 무분별한 토지 개발을 막기 위한 각종 용도지역과 용도지구를 만들어왔다.
그러다보니 현재 13개 부처가 112개 법률을 근거로 총 298개 종류의 용도지역 및 지구를 지정하고 있다. 중복 지정된 곳도 많다.
현재 지정된 용도지역과 지구를 모두 합치면 45만9054km²로 남한 전체 면적의 4.6배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1개 필지(토지를 세는 단위)에 평균 4.6개의 용도지역이나 지구가 지정돼 있는 셈이다.
토지를 이용하는 사람으로서는 자기 땅에 무슨 규제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토지 규제가 복잡하다. 이에 따라 기업의 투자를 어렵게 하고 국민의 불편을 가중시킨 측면도 적지 않다.
게다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공장 도로 주택공급 등으로 토지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데 개발용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의 면적은 남한 전체 국토의 5.6%, 국민 1인당 36평에 불과한 실정이다. 영국의 13%(1인당 161평)나 일본의 7.0%(65평)보다 훨씬 부족하다.
재정경제부 당국자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개발할 수 있는 땅의 면적이 2020년까지 매년 여의도 면적(2.9km²)의 20배에 이르는 58km²가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토지 규제 어떻게 정리하나=이번 토지 규제 합리화 방안의 기본 원칙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관리자 위주의 토지 관련 규제를 이용자 즉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단계로 내년 7월 시행을 목표로 토지이용 규제 기본법을 제정해 토지 규제를 일원화한다는 계획이다. 각 부처는 9월 정기국회 이전까지 개별법에 흩어져 있는 규제 가운데 필요 없는 것은 없애고 비슷한 규제들은 묶는 등 토지 규제 통폐합 계획을 마련한다.
내년 7월부터는 기본법에 근거가 없는 새로운 지역 지구 설치가 제한된다. 또 토지이용 규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주민 의견 청취 절차를 의무화하고 지역 지구 지정 현황 등을 전산화해 누구든지 토지 규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규제만든 부처 반발땐 통폐합 지지부진”▼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민간 전문가들은 일단 ‘옳은 방향’이라고 반기면서도 토지 규제의 정비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진명기 JMK컨설팅 사장은 “재정경제부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환경부 등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규제가 필요한 이유를 들면서서로 자기들의 규제는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총리실 같은 곳에서 총괄하면서 지속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이지 않으면 또다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토지 관련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겠다고 하는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등장했지만 실행에는 잘 옮겨지지 않았다”면서 “수도권 집중 억제, 환경 보호 등의 이유로 그동안 규제는 더 누적돼 왔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현행 규제들이 나름대로 생긴 이유가 있고, 부처이기주의와도 맞물려 개별 토지 규제를 통폐합하는 데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방향은 맞지만 토지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난개발을 유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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