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4년 墺 황태자부부 피격 사망

  • 입력 2004년 6월 27일 18시 12분


“그대 모습 보일 때 천국은 열리고/그대 모습 사라지면 지옥이 보이네/사랑에 애타는 이 가슴은/오늘도 찾아 헤맨다 사라예보를….”(‘그라치에(안녕) 사라예보’)

유럽의 화약고(火藥庫) 발칸. 그 한가운데에 위치한 보스니아의 ‘눈’ 사라예보.

사라예보는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붉게 타오른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20세의 세르비아 애국청년이 발사한 탄환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의 가슴에 명중했다. 황태자비는 임신 6개월이었다.

저격범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비밀결사인 ‘검은손’ 단원이었다.

프린치프는 기회를 놓치는 듯했다. 경비는 삼엄했고 군중 틈을 뚫고 ‘사정거리’에 접근했을 땐 이미 차량이 지나간 뒤였다.

그러나 천우신조(?)였을까.

길을 잘못 든 차량은 서서히 후진하기 시작했고 품에서 권총을 매만지고 있던 프린치프의 바로 앞에 멈춰 섰으니.

현장에서 체포된 프린치프를 포함해 ‘30인의 암살자 그룹’이 검거됐다. 오스트리아로 끌려간 프린치프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처형도 되기 전에 옥사하고 만다.

당시 유럽은 지뢰의 인입선(引入線)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었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형국이었다.

특히 발칸은 바람이 거셌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발칸의 종주권을 놓고 날카롭게 대립했다.

암살사건이 터지자 오스트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엣가시’인 세르비아를 쳤다.

세르비아와 같은 슬라브족인 러시아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뒤에는 같은 게르만족인 독일이 버티고 있었다. 러시아와 ‘3국협상’을 맺었던 프랑스와 영국도 나선다.

황태자의 피살은 단지 구실이었다. 발칸에서 한번 방아쇠가 당겨지자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불바다에 휩싸이고 만다.

4년반 동안 6000만명의 젊은이가 전쟁터에 끌려가 900만명이 사망했다.

프랑스와 헝가리에선 성인 남자의 2할이 전사했다.

기관총과 전차, 잠수함이 처음 선보였고 독가스가 살포돼 수십만명이 몰살된다.

암세포처럼 식민지를 부풀려가던 20세기 제국주의는 종국엔 스스로를 겨누었으니!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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