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종하/테러범 의도에 말려들어서야

  • 입력 2004년 6월 27일 18시 50분


테러집단에 의해 끝내 무참히 그리고 가장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희생된 김선일씨의 주검이 고향에 도착했고, 국민 모두가 슬픔과 비통함으로 이를 맞고 있다. 한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 후 최초로 한국 민간인이 테러를 당했으며, 이로써 우리는 소위 비대칭적 전쟁이라고 일컫는 테러 전쟁의 당사자로 빨려 들어갔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희생과 피해가 없는 전쟁은 없다. 전쟁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가리지 않으며, 특히 테러전에서는 오히려 비전투원이 주공격 대상이 된다. 우리가 이 전쟁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테러 전략을 잘 짜고 전투원 및 비전투원에 대한 훈련을 잘 시켜야 한다.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우선 적을 알아야 한다. 적의 목표와 수단을 사전 파악해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국론 분열시켜 파병철회 노려▼

심리전을 중시하는 것이 테러전의 특성이다. 테러전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적이 원하는 바를 해주는 것이다. 테러집단은 한번 공격전술을 편 뒤 그 결과를 평가해 효과가 좋으면 이를 확대 적용할 것이다. 김씨를 죽인 테러집단의 목표는 한국의 추가파병을 저지 및 철회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한국과 미국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지금 국내에는 두 갈래의 반응이 있다. 그 하나는 테러집단에 대해 분노하면서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테러를 받으면서까지 우리 젊은이들의 귀한 생명을 희생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가 전자를 대표하며 거기에는 한국의 많은 네티즌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것이 테러에 대한 정답이다.

하지만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그들에게도 파병을 하지 않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느 한 쪽이 상대방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각자는 그들의 판단을 논리적으로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국론이 분열된 문제일수록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김씨에 대한 무참한 테러가 실제로 발생한 ‘현시점에서’ 그 반응으로 나온 국민의 슬픔을 파병 반대에 이용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그것은 결국 테러집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결과가 된다. 이 점에서 김씨의 죽음을 파병 반대로 연결시키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할 뿐 아니라 제2, 제3의 인질극을 초래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김씨의 납치와 살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는 ‘알 카에다’와 연계된 세계적 테러조직으로, 그들은 테러 결과를 언론을 통해 검색하고 효과를 측정하는 능력을 가진 조직이다. 한국에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여론이 나타나면 그들은 크게 기뻐할 것이며 다음 인질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하다.

테러의 피해 당사자, 피해 당사국은 우선 단합된 모습으로 테러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규탄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정상적이고 올바른 반응이다. 그 다음은 그 테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를 냉정히 강구하는 것이 순서다.

▼제2의 테러가능성 경계를▼

테러 희생이 발생하기까지 우리 정부 쪽의 문제는 없었는지 따지고, 책임을 규명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잘못에 대해서는 마땅히 문책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 점에서 9·11테러 때 미국 국민이 보여준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테러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나 정보 수사기관의 착오와 비능률 등의 문제는 국론 통합과 대비책 수립에 만전을 기하는 이면에서 철저하게 규명하고 시정하도록 하는 게 옳은 절차다. 이라크 사태는 그만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유종하 전 외무부 장관·서강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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