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되는 고대 그리스에는 150여개의 도시국가들이 있었다. 폴리스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저마다 우월감에 빠져 서로 협조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스 역사에서 폴리스들이 단결했던 일은 단 한 차례뿐이었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의 30만 대군이 침략해오자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연합군을 편성해 물리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스인이 타국에 건설한 식민지끼리도 서로 등을 돌리기 예사였다.
▷내분이 끊이지 않던 그리스가 강력한 신생국가 로마에 지중해의 패권을 넘겨준 것은 당연한 역사적 귀결이었다. 이후 그리스는 비잔틴제국에 이어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세계사의 흐름에서 멀찌감치 밀려나게 된다. 그리스를 방문한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위대한 문명을 만들어낸 그리스인은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며 상념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스가 8월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 ‘트로이’도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을 다룬 것이고, 국내 공연된 뮤지컬 ‘맘마미아’도 그리스가 배경이다. ‘유로2004 축구’에서 그리스 대표팀이 선전하고 있는 점도 그리스에 대한 관심을 부풀리고 있다. 1830년 독립국가가 된 그리스는 내분과 정쟁으로 불안한 근현대사를 이어 왔다. 한국이 서울올림픽을 통해 6·25전쟁으로 얼룩진 국가이미지를 일신한 것처럼 그리스도 과거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 열쇠는 역사학자들이 지적한 대로 내부의 협동과 단합에 있지 않을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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