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5년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 입력 2004년 6월 29일 18시 43분


“나는 꿈속에서 빛을 빠르게 뒤쫓아 갔다. 아주 빠르게 빛을 쫓아가면, 그래서 빛의 속도를 따라잡게 된다면?”

그러면 빛은 멈추게 될까. 우리는 ‘멈춰 있는 빛’의 세계에 머물게 될까.

그러나 ‘16세의 청년’ 아인슈타인은 꿈속에서도 끝내 빛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빛과의 속도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 의문은 10년이 지난 뒤에야 풀린다.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속도와 관계없이 항상 일정하다. 어떤 물질도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는 없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비길 데 없이 눈부시게 타올랐던’(막스 보른) 해인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된다.

맞물려 들어가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인류는 마침내 ‘4차원의 시공간’에 눈을 뜨게 된다. 자연(自然)에서 원자력 에너지를 끄집어내 20세기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아인슈타인은 이어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태 뒤에 런던왕립학회가 촬영한 개기일식 장면을 통해 “별빛이 태양을 가까이 지날 때 휘어질 것”이라는 예언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아인슈타인의 명성은 대중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미국의 우익세력에 의해 ‘무균(無菌)처리’된 과학자의 모습이다. 정치적으로 완전 탈색(脫色)된.

그는 파시즘은 물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모두 반대했던 ‘좌파(左派)서클’의 일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 이미 반전운동을 벌였던 평화주의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그 ‘순종적인’ 과학자 사회에서 독일 군국주의를 공공연히 비판했다. 1950년대 냉전시대엔 매카시즘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물리학계의 볼셰비키였고 아나키스트였다.

나치의 ‘처단 명단(Hit List)’에 올랐던 그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1급 감시 대상이었던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원폭 기밀을 소련에 넘길 수 있는 위험인물이다.”(후버)

마지막 순간까지 인류의 양심에 헌신했던 아인슈타인.

그는 ‘존재하는 것의 조화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스피노자의 하느님’을 굳게 믿었다.

“정치(政治)는 순간을 위한 것이다. 방정식(方程式)은 영원을 위한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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