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충만하던 그때에 세계는 연이어 터진 강력한 폭발에 넋을 잃었다.
7월 1일. 태평양의 마셜군도에 속한 ‘비키니(bikini)’에서 미국이 공개핵실험을 했다.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것과 같은 급의 원폭이 투하돼 산호섬은 불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나흘 뒤. 프랑스 파리의 포리토르 수영복 대회에 모인 1만여 관객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여성모델이 손바닥만한 천으로 젖가슴과 아랫부분만 가린 채 나타났다. 배꼽과 하반신을 온통 드러낸 투피스 수영복은 충격이었다. 혁명이었다.
디자이너 루이 레이는 이 해괴한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수영복 패션의 ‘핵폭발’을 암시하고 있었다.
비키니 수영복은 젖가슴과 그 아래를 가린 ‘작은 비키니 섬’이었고, ‘두개로 나뉜(bi-)’ 섬이었다.
그때만 해도 여성의 수영복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치마였다. 아니, 여성이 다리를 드러내는 것조차 외설이었다. 점잖은 영국 신사들은 피아노의 다리조차 양말을 신겼으니.
그러나 배꼽을 드러낸 여성의 투피스는 기원전 14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50년 그리스에서는 지금의 비키니와 놀랄 만큼 흡사한 수영복을 즐겨 입었다.
중세의 기독교가 아담과 이브에게 입힌 ‘죄의식의 옷’을 벗겨낸 것은 비키니였다. 한번 여성의 수영복이 짧아지기 시작하자 그 짧아지는 속도는 놀라웠다.
1964년에는 가슴가리개 부분이 없는 더욱 과격한 ‘모노키니(monokini)가 등장한다. 토플리스 수영복이다.
모노키니는 비키니의 한쪽(흔히 그 아래쪽)을 가리키지만, 모노키니 마니아들은 모노키니와 선글라스를 합쳐 비키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1990년대 들어 모노키니의 더욱 진화(?)된 형태인 ‘지 스트링(G-string)’이 선보인다. 엉덩이를 가리는 천 조각은 점점 가늘어져 어느새 ‘끈’ 모양이 되었고, 급기야는 엉덩이 사이(?)로 꼬리를 감추었다.
20세기 들어서야 코르셋에서 해방됐던 여성들. 비키니는 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노출의 자유를 선사했다.
비키니, 그것은 ‘여성 해방의 상징’일까.
아니면 ‘노출’이라는 또 다른 성적 상징의 예속(隸屬)일까.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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