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돈/‘재산형성 등록제’ 문제있다

  • 입력 2004년 7월 5일 18시 17분


열린우리당이 도입하려는 ‘공직자 재산형성 과정 등록제’는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발상이다.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취득 경위와 소득원을 등록하도록 해서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이 공직에 취임하는 것을 막고, 공직을 이용한 재산증식도 차단하겠다는 것이 ‘재산형성 과정 등록제’다. 기존의 공직자 재산등록은 재산 현황만 보여주기 때문에 그 형성 과정도 등록시키겠다는 것이다.

▼비현실적 발상 사생활침해 우려▼

재산등록은 공직윤리를 담보하는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재산형성 과정을 일일이 등록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더러 사생활 침해이기도 하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정기적으로 재산 변동사항을 등록토록 한 마당에 새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현행 제도는 재산증식 과정을 설명해주지 않지만 재산공개 대상자인 고위 공직자에게 의심스러운 재산 증가가 있으면 여론의 검증을 받기 마련이다.

공직자 재산등록 제도는 공직 취임 후 부당한 재산 증가를 막기 위한 것이니만큼 취임 전의 재산형성을 등록하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은 어차피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임명권자가 그런 점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임명하면 된다. 국회의원은 선거 과정에서 재산 학력 등이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구태여 당선 전의 재산형성 과정을 등록케 할 필요가 없다. 만일 어떤 후보가 과거의 재산형성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서도 유권자의 지지로 당선됐다면 실정법 위반이 없는 한 그것으로 검증은 끝난 것이다.

왜 이 시점에서 여당이 주식 백지신탁제나 재산형성 과정 등록제 같은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려는지 궁금하다. 주식 백지신탁제는 말이 신탁이지 사실은 주식을 처분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현 17대 의원들에게 주식 매각을 강요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자 여당은 주식을 보유하되 거래를 금지하는 ‘보관신탁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공직자의 부동산 등 모든 재산을 신탁케 한다는 것은 황당한 발상이다. 개발계획을 미리 알고 땅 투기를 하는 공무원이 있으면 그들을 적발해 처벌하면 될 일이지 공무원은 부동산을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말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재산이 웬만큼 있는 사람은 공직 맡을 생각을 말라는 게 여당의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재산등록이란 본래 공직자의 업무 수행에서 생길 수 있는 이해 충돌을 예방하고,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공직자윤리법을 제정해 재산등록을 의무화하긴 했지만 정작 이해 충돌 예방 규범은 미비한 편이다.

선진국에서 재산등록 때문에 유능한 인재가 공직 취임을 꺼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도 고려할 점이다. 요즘은 경제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이라 실물경제를 운용해 본 사람이 공직도 잘 수행한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도 꽤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이들을 죄인 취급하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나라를 끌고 갈지 뻔한 노릇이다.

▼공무원 윤리기준 강화 급선무▼

고위 공직자의 윤리 확립은 절실하다. 그러나 여당이 도입하려는 제도는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일뿐더러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과 사생활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요소가 많다. 이런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부패를 없애고 공무원 윤리기준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런 고질적인 부패를 없애기 위해선 엄정한 법 집행과 함께 불필요한 규제의 혁파와 공직강령의 강화가 필요하다. 곰곰이 따져보면 모든 일에는 다 그런 식으로 적절한 해법이 있는 법이다. 무조건 고단위 해법을 내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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