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팽월은 거야택(巨野澤)을 나와 패공과 더불어 창읍(昌邑) 근처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왜 그 길로 패공을 따라 서쪽으로 가지 않고 아직도 거야택에 남았다고 하더냐?”
전영이 그렇게 묻자 신하가 아는 대로 대답했다.
“팽월이 원래 남의 밑에 들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위왕(魏王) 구(咎)가 죽은 뒤 흩어진 위나라 군사들을 거둬들일 만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팽월이 군사 천여명과 남아 위나라 군사를 거두겠다고 하자 패공이 허락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바람에 팽월은 관중으로 들어가 공을 세울 기회를 잃어, 군사를 만여명이나 거느리고도 돌아갈 곳이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전영에게 권했다.
“대왕께서 지금이라도 팽월에게 장군인(將軍印)을 내리시고 제나라 장수로 부르신다면 팽월은 기꺼이 달려올 것입니다. 그런 팽월에게 명하시어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을 쳐 없애게 하시면 대왕께서는 손바닥에 침 한번 뱉지 않고 삼제(三齊)를 모두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 되면 패왕 항우는 팽월을 미워할 것이니, 팽월이 또 하나의 경포가 되는 것을 막는 길도 됩니다. 어서 팽월을 불러 쓰도록 하십시오.”
이에 전영은 온전하게 믿지 못하면서도 그 신하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장군인을 새겨 사자에게 주며 팽월을 찾아보게 하였다. 제나라 장수가 되어 제북왕 전안을 쳐달라는 전영의 당부와 함께였다.
뜻밖에도 제나라의 사자로부터 장군인을 받은 팽월은 몹시 기뻐했다. 천하를 갈라 여럿에게 나눠주면서 자신만은 빼버린 패왕에게 무슨 앙갚음이나 하듯, 전영의 장수가 되어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팽월은 날래고 거친 무리 만여명을 거느리고 바람처럼 제북으로 밀고 들었다. 전안이 맞선다고 맞섰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팽월의 세력에 밀려 약간의 장졸들과 함께 박양(博陽) 성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팽월이 다시 무리를 휘몰아 급하게 박양성을 들이쳤다. 더 물러날 곳이 없게 된 성안의 장졸들이 힘을 다해 맞섰으나 오래 견뎌내지 못하였다. 열흘도 안돼 박양성은 팽월의 손에 떨어지고 전안은 어지럽게 뒤엉켜 싸우는 군사들 사이에서 누구에게 당한지도 모르는 채 어이없게 죽고 말았다.
팽월이 제북을 평정한 소식을 전하자 전영은 크게 기뻐했다.
<…장군의 공을 높이 치하하오. 이제 장군을 대장군으로 높여 세우나니 제음(제음)에서 남하하여 항우가 봉지로 삼고 있는 양(양=위)나라로 가시오. 어렵더라도 양나라 땅에 자리 잡고 항우와 맞서주시면 우리 제나라가 그 뒤를 든든히 받쳐줄 것이며, 다른 제후들도 대장군을 도와 마침내는 양왕(양왕)에 오르게 될 것이오…>
그렇게 팽월의 공을 치켜세움과 아울러 새로운 일을 맡겼다. 그러나 팽월은 왠지 이번에도 두 말 없이 전영의 명을 따랐다. 그 사이 배로 늘어난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양나라 땅을 근거로 패왕에게 맞서기 시작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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