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에 발간된 소설들 중에는 특히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인문교양 소설들이 많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후예라 할 수 있는 이들 작품은 추리소설의 재미와 지적 흥분을 함께 안겨주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추리소설이라 할 만하다.
‘다빈치 코드’는 루브르 박물관장을 살해한 범인을 쫓는 긴장감과 피살자가 남긴 의문의 암호를 풀어가는 지적 흥분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겉으로는 추리소설과 스릴러의 형식이지만 내부는 기호학과 도상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서구문화에 숨겨진 반기독교적 전통을 추적한다.
유럽을 무대로 한 ‘다빈치 코드’가 반로마가톨릭교적 코드를 지녔다면 미국을 무대로 한 ‘단테 클럽’(전2권)은 청교도적 보수주의를 겨냥한다. 19세기 미국 보스턴을 무대로 시인 롱펠로를 비롯한 일단의 문인들이 단테의 ‘신곡’ 번역에 착수한 뒤 잇달아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 그 사건의 배후에는 청교도적 지식인들이 숨어 있다.
‘자본론’의 저자 카를 마르크스와 같은 이름의 작가가 쓴 ‘자본론 범죄’는 지난해 출간된 ‘애덤 스미스 구하기’의 쌍생아다. ‘애덤 스미스 구하기’가 빙의(憑依)를 통해 부활한 애덤 스미스를 죽이려는 범죄자와의 대결을 통해 그의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면, ‘자본론 범죄’는 영생(永生)을 얻은 마르크스의 일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의 사상을 재구성한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다른 장르의 묘미가 가미돼 맛이 깊어진 정통 추리소설도 적지 않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사이코’와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태양은 가득히’는 모두 추리소설이 원작이다. 이 작품들은 다중인격과 완전범죄라는 이색소재로 현대사회를 새롭게 조명한 심리소설 또는 사회소설로 읽힐 수 있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하나로 꼽히는 ‘환상의 여인’은 하루하루 다가오는 사형집행일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줄 여인을 찾는 남자주인공의 심리적 압박감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특별요리’는 일상의 공포와 추리소설을 결합한 단편들로 채워져 있어 여름의 더위를 쫓기에 적격이다. 미국 법조계의 문제점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고발한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도 추천할 만하다. (도움말=정태원 추리작가협회 이사)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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