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099년 십자군, 예루살렘 함락

  • 입력 2004년 7월 14일 18시 49분


이곳엔 ‘통곡의 벽’(유대교)이 있고, 성묘교회(기독교)가 있으며, 오마르사원(이슬람교)이 있다.

3대 유일신(唯一神)교의 성지(聖地), 예루살렘.

기원전 3000년경 가나안 부족은 이곳을 ‘우루살림(평화의 도시)’이라고 불렀다. 술탄이 통치하던 시절 예루살렘에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공존했고, 기독교 순례자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그리스도의 군대’를 소집한 이래 이곳은 증오의 피로 물들었으니.

“기독교의 성지를 이슬람 치하에서 해방시킨다”는 십자군전쟁은 서구인들에겐 원정(遠征)이었으나 이슬람에겐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그 속내는 복잡하다.

교황은 유럽 기독교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했다. 중세 기사들에게 그것은 모험과 약탈, 정복의 기회였다.

그것은 종교전쟁이면서 동시에 권력과 탐욕의 세속전쟁이었다.

십자군은 그들의 성전(聖殿)에서 거리낌 없이 이교도(異敎徒)들을 살육했다.

예배당에 피신한 유대교인들을 끌어내 솥에 삶았고, 이슬람교도들이 금화를 삼켰다는 소문이 돌자 그들의 배를 갈랐다.

“솔로몬 신전에서 사람들의 무릎과 말굴레까지 피에 파묻혔다!”

1099년 7월 15일, 제1차 원정군은 예루살렘을 함락시켜 기세를 올렸으나 이후 7차례에 걸친 전쟁은 실패로 막을 내린다.

전쟁은 200년간 계속됐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의 골은 보스니아 코소보 체첸분쟁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9·11테러, 이라크전쟁으로 이어진다.

아랍인이 보기에 서구세력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된 것은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이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이를 십자군 또는 성전(聖戰)을 뜻하는 ‘크루세이드(crusade)’로 표현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성전이고, 이에 맞선 이슬람의 ‘지하드’는 테러리즘인가. “(부시는)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귄터 그라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십자군 원정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한 터에 부시의 ‘종교적 열정’은 그로테스크하다. 그만큼 중세기적이다.

이라크전쟁은 이미 1000년 전에 예비된 ‘문명의 충돌’이었던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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