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노맹 출신이 의문사위 조사관

  • 입력 2004년 7월 15일 0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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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죄.반국가단체 가입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인사들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민간인 출신 조사관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중앙일보가 15일 보도했다. 의문사위는 최근 공안기관의 전향 강요를 거부하다 옥중에서 숨진 남파간첩.빨치산 출신 세명을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던 대통령 소속 기관이다.

이 신문은 14일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을 인용해 조사관 K씨는 1993년 일본에서 북한간첩에 포섭돼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에 검거됐다고 밝혔다.

당시 안기부는 K씨가 92년 여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북한간첩에게 국내에서 수집한 군사기밀자료를 넘겨주고 공작금 60만엔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언론에도 보도됐던 이 사건은 안기부가 프락치를 동원한 함정수사를 통해 조작했다는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안기부는 "프락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K씨가 간첩인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K씨는 4년을 복역하고 97년 출소했다.

또 다른 조사관 H씨는'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에서 연락총책으로 활동하다 90년 구속돼 8년여간 옥살이를 한 뒤 만기출소했다.

사노맹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검찰 관계자는 "H씨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며 "박노해씨 등은 사회주의에 대한 소신을 바꿔 감형과 사면을 받았지만 H씨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사노맹은 출범 선언문에서"사노맹 출범은 남한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북한 등 각국 노동자당 동지들과 함께 전 세계 노동자 계급 해방 투쟁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조사관 L씨도 군복무 중이던 86년 "군은 정권획득을 위한 수단일 뿐 우리 현실에는 공산주의가 더 적합하다"고 발언한 혐의로 군검찰에 검거돼 1년간 복역했다.

이들 세명은 필기.면접시험을 거쳐 지난해 7월 출범한 제2기 의문사위에 채용됐다.

현재 의문사위 조사관은 63명으로 이 중 36명은 민간인 출신이며 나머지는 경찰.검찰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이다.

K씨 등은 모두 민간인 출신 조사관이다. 이들은 최근의 남파 간첩 의문사 사건 조사를 담당한 부서 소속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 조사관은 직급에 따라 4~7급 등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출석요구·사실조회 등을 통해 국가기관을 조사할 수 있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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