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제2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이 치러야 할 잔여 형기(刑期)다.
설혹 무기형이 20년으로 감형되더라도 추가 형기를 채워야 하니, 이 역시 절반으로 줄어도 얼추 23년을 복역해야 한다.
그의 나이 서른일곱. 환갑이 되어 흰머리가 성성해진 뒤에나 햇빛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신창원이 쇠톱날로 감방 화장실 쇠창살을 ‘썰고’ 탈옥을 감행한 게 1997년 1월. 그는 강도치사죄로 무기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이때부터 2년6개월에 걸친 도주 과정은 그야말로 ‘신출귀몰’이다.
그는 서울과 부산을 50번도 넘게 오가며 130여 차례 강절도 행각을 벌였다. 토굴과 ‘비트’에서 들쥐를 잡아먹기도 하고 비스킷 한 쪽으로 버텼다. 초인적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눈앞에 두고도 13차례나 놓쳤다.
경찰 헬기가 뜨고 전경부대가 동원됐으나 그는 번번이 이를 비웃었다. 현상금 200만원은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로는 최고액인 55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가 한번 ‘떴다’ 사라질 때마다 경찰이 줄줄이 징계를 받고 지휘선이 무너지는 바람에 ‘신출경몰(申出警沒)’이라는 우스갯말까지 생겨났으니.
신창원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던 경찰.
그 경찰은 검거 당시 분풀이라도 하듯 결박된 그의 윗옷을 치켜 올려 TV 카메라 앞에 세워놓았다. 어렵사리 포획한 ‘전리품’의 등에 새겨진 문신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으니.
그것은 경찰과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만행이었다.
교도관들의 가혹행위를 고발하기 위해 탈옥했다는 신창원. 그는 평생 그 교도관들과 함께 지내야 될지도 모르는 처지지만 4월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최근 이해인 수녀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저는 아직도 예수님께 전부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조그만 것에 집착하고 있거든요….”
그는 개과천선(?)한 것일까.
‘대도’ 조세형의 부탁으로 변호를 맡았던 엄상익 변호사에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절도범이고 강도범입니다.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면서 여운을 남겼다.
“어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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