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兪吉濬·1856∼1914년)은 1880년대에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을 돌아보며 당시 세계질서의 변화 속에서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했던 개화 지식인이었다. 저자(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정치학)는 당시 유길준과 같은 ‘열린 지식인’들이 단지 서양의 문명을 추종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서양의 근대 문명과 동양 전통의 유교문명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좀더 나은 보편문명을 창출하고자 했다”고 평가한다.
유길준의 대표작인 ‘서유견문’(1885)은 단순히 서양에 대한 여행기가 아니라 근대적 국정 개혁의 방향과 방법을 담고 있는 국가전략 기획서였다. 유길준의 제안은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조선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당시의 시점에서만 서구가 잠시 앞서 있을 뿐이므로 누구든지 노력하면 개화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서 주체적 노력을 강조했다.
“아무 분별도 없이 외국 것은 다 훌륭하다고 하여 자기나라 것은 업신여기는 자는 ‘개화의 죄인’이요, 외국 것이면 가까이조차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만을 천하제일인 듯이 여기는 자는 ‘개화의 원수’며, 입에는 외국제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제 시계를 차며 외국풍습을 이야기하거나 외국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는 ‘개화의 병신’이다.”
유길준은 이렇게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며 “타인의 장기를 취하고 자신의 장점을 지키면서 시세와 처지를 감안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개화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21세기 한국형 세계화’를 제대로 구상하고 실천에 옮길 21세기 진보 지식인의 상을 유길준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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