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영봉/세계 중심의 한국바둑

  • 입력 2004년 7월 18일 19시 54분


지난달 중국의 바둑 전문지인 ‘위기천지(圍棋天地)’가 이창호 9단을 인터뷰했다. 바둑계의 천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 9단은 “1위는 우칭위안(吳淸源) 선생, 다음은 조훈현 선생”이라고 대답했다. “10여년 세계 최강인 당신은 자격이 없는가”라고 묻자 “나는 노력형”이라고 답했다. 한 바둑해설 시간에 조 9단이 내제자 시절의 이창호에 대해 술회했다. “그 방에서는 밤새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생 어린애가 타지에 홀로 떨어져 바둑공부만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떤 때 자정이 넘어 바둑돌 소리가 그쳤는가 하여 방문을 열어 보면 바둑판에 엎어져 잠이 들었더라.”

▷5년 전 무적의 여류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 부부가 중국을 떠나 표류할 때 일본 여기사들은 그녀가 기전(棋戰) 상금을 독식할 것을 우려해 일본기원 입성을 거부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의 10대 병아리 여기사들이 “그와 대적해 실력을 기르자”며 오히려 남자 기사들을 설득해 루이 부부를 한국기원에 유치했다. 2년 뒤 한국의 여류는 루이 9단을 극복해 여류 국수를 탈환하고 세계 최강의 대열에 서게 됐다.

▷한국에서 프로기사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지난주 후지쓰배(杯) 세계대회를 제패한 10대 기사 박영훈은 여덟 번 실패한 다음 입단의 문을 통과했다. 이런 경쟁 도전 정진의 설화 속에서 한국 바둑은 세계 최강이 됐다. 막부(幕府) 이래 바둑 성지를 자처하는 일본과 13억 인구의 중국 바둑을 누르는 일이 어떤 대업(大業)인지 아는가? 우리 정치 경제가 한국 바둑계를 반만 닮았어도 우리는 이미 5만달러 국민소득을 달성하지 않았을까?

▷이제 정부가 한국 바둑을 ‘균형 성장’시키기로 했다고 하자. 바둑부(部)를 창설하고 정치인 장관을 임명한다. 기사 노조를 만들고 이들은 기전의 운영 참여와 이라크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파업한다. 기사 지망생을 서열화하는 연구생 리그는 폐지하고, 성적보다 형편이 궁한 원생에게 장학금과 특별입단 기회를 부여한다. 지방 균형발전을 위해 한국기원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고 입단-승단 기회는 각 지방에 고루 나눈다. 이리하면 5년 후 한국 바둑은 어떤 변방(邊方)이 될까.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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