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재구성에서 당시 범행 후 그는 현장을 떠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한동안 상황을 지켜봤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1월 18일.
유씨는 이날 오전 11시반경 성곽과 연결돼 있는 피해자 김모씨(87) 집 뒷담으로 침입해 열려 있던 현관문을 지나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성곽을 지키는 경비원이 졸고 있었으며 뒷담을 넘을 때 옆집의 큰 개가 짖어대 잠시 가만히 멈춰서기도 했다.
유씨는 2층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1층으로 내려오다가 아기를 안고 있던 파출부 배모씨(57)와 마주쳤고 배씨를 칼로 위협해 김씨가 자고 있던 1층 안방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비명소리 한번 못 지르고 유씨에게 살해됐고 이어 배씨도 희생양이 됐다. 그러나 그는 아기는 작은방으로 옮겨 놓고 이불까지 덮어주었다.
이어 유씨는 2층 작은방에서 금고를 발견하고 강도로 가장하기 위해 집안에 있던 골프채, 곡괭이, 호미, 전지가위 등을 가져와 금고를 부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손을 다치는 바람에 방바닥에 피를 묻힌 유씨는 DNA(유전자) 검사를 막기 위해 2층 방과 1층 방에 불을 질렀다.
유씨는 낮 12시20분경 옷에 피가 묻어 있자 거실에 있던 검은색 잠바를 입고 유유히 걸어나와 집과 10여m 떨어진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려 했다. 이 건물로 가는 도중 맞은편 건물의 폐쇄회로(CC)TV에 뒷모습이 찍혔다.
유씨는 건물 직원들이 옥상 출입을 허락하지 않자 피해자 집과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모 신학원으로 갔다. 그는 언덕 위에 있는 이 신학원에서도 피해자 집이 잘 보이지 않자 다시 피해자의 집 근처 골목까지 와서 집에 불이 나는지를 계속 관찰했다.
유씨는 낮 1시경 피해자의 집에 찾아온 가스검침원과 오후 2시경 김씨의 손자며느리가 찾아왔으나 집에 아무도 없어 되돌아가는 모습을 본 뒤에야 현장을 떠났다. 이들은 불이 방 내부만 태워 불이 난지도 몰랐다.
17일 이뤄진 1차 현장검증에서 유씨는 “이 집에 원래 대문이 있었는데 없어졌느냐”고 경찰에 묻기까지 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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