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도 냉소도 아닌 행동에 나설 때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이 참에 국가체제와 경제체제를 바꾸겠다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에겐 어떤 충고도 소용없을지 모른다. 그런 쪽이 아니라면 대통령도, 정치인도, 경제정책 당국자도, 다른 관료도, 기업인도, 노동자도, 학자와 연구자도, 언론도 경제 부활과 민생 회생을 위한 자기 몫의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화두를 던졌다. “상황이 어려워도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아야 나라가 살 수 있다.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는 발언이다. 그가 은행으로부터 자문료를 받은 게 비판받고 있지만 이는 따로 논란할 일이고, 근본적 문제는 ‘시장경제의 위기’다.
왜 시장경제인가. 이것이 무너지면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경제도 민생도 시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의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고, 경쟁 메커니즘을 통해 효율성과 공정성을 극대화하자는 게 시장경제다. 누구나의 이기심을 경제행동의 생산적 동기로 활용하는 게 유효하다는 인식이 바탕이다. 부작용은 국가가 교정하되, 기본적으로는 이익추구가 권력이나 정치 사회적 압력에 의해 침해되지 않아야 대다수를 위한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나라에서는 자본도, 고급인력도, 첨단기술도 달아날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반(反)시장주의로 역행하는 한국, 더 자본주의적인 중국’ 이것이 현실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외면했다면 구매력 기준으로 일본, 독일까지 제치고 미국을 추격하는 나라가 됐을까. 분배와 복지를 우선시하던 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침몰하거나 한계를 절감하고, 안정적 시장경제 실현에 매달리고 있음은 뭘 말하는가.
대통령부터 입버릇처럼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는 다름 아닌 시장경제 원칙이 흔들림 없이 작동하는 나라다. 그럼에도 지도층이 반기업 반부자 정서를 부추기고, 주택 같은 사유재산을 공공재(公共財)라 우기고, 기득층과 비(非)기득층을 편 가르고, 무엇이든 빼앗아 나누는 게 선(善)인 듯이 바람을 일으킨다면 그 결말은 자명하다. 또 내가 싫으면 법을 안 지켜도 되고, 인기만 얻을 수 있다면 시장경제 원리는 언제나 짓밟을 수 있다는 행태가 정치권과 노동운동 현장, 심지어 입법 활동에서까지 만연한다면 그 해독(害毒) 역시 뻔하다.
경쟁 제한적 규제 사슬, 개혁으로 포장한 기업활동 제한, 원가공개 등 시장수급 원리를 무시한 정책, 부유세 도입 주장 등을 보면서 ‘한국이 시장경제로부터 멀어지는구나’하는 판단과 의심이 커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경제는 앞뒤도 안 맞는 몇 가지 재정정책, 세금정책으로 풀 수 있는 단계는 지나버린 구조적 위기상태다. 시장경제를 계속 흔들어대고서는 누구를 정책 책임자로 앉혀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대통령부터 입장을 확실하게 밝히고, 정치권도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관료들도 눈치만 봐서는 안 된다. 재계도 도망만 가서는 안 된다. 지식인 그룹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 모두들 음유시인처럼 선문답 같은 소리만 해서는 안 된다. 노동운동가들에게도 경제 살려 전체 노동자가 함께 사는 길을 택하라고 호소하고 싶지만, 이들이 막무가내라면 과격노동투쟁의 피해자인 더 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할 권리를 빼앗긴 실업자들이 지금 같은 노동운동에 반대해야 한다. 세계는 질주하는데 우리만 이념의 귀신에 씌어 국가체제와 경제체제를 흔들고 뒤튼다면 기다리는 건 추락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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