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들, ‘팔자 좋은’ 지식인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21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전환기의 한국 언론:한국 방송의 공정성’을 주제로 한국언론학회가 개최한 세미나가 끝나 갈 무렵이었다. 이 세미나는 6월 10일 발표 직후 방송계와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탄핵방송 보고서’를 둘러싸고 당시 이 연구에 참가했던 학자들과 반대측 학자들이 처음 자리를 함께한 토론회였다.
진보적 성향의 임영호(林永浩)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팔자 좋은 지식인들’이라는 말을 꺼내자 장내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지식인은 지식의 논리로 말해야 합니다. (탄핵방송이 불공정했다고 지적한 보고서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대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학문의 영역에 적용해 (보고서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으로 지식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일부 언론학자들은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연구원들의 성향과 경력을 문제 삼아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해 왔다. 이들은 그동안 “보고서는 사회적 공해” 등 인신공격성 발언들로 보고서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이날 세미나에선 연구자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이 보고서의 결론을 어떻게 왜곡했는지, 논리 전개상의 오류가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하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방법론상의 일부 문제가 제기됐지만 “이만큼 완성도 높은 논문을 기대하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며 보고서의 학문적 엄밀성을 인정하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동안 보고서를 비판해 온 일부 학자들은 이탈리아의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말한 ‘유기적(실천적) 지식인’을 떠올렸을 법하다. 그러나 학문적 근거를 갖지 못한 실천은 사회의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
스스로에게 돌을 던진 임 교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번 보고서를 뛰어넘는 연구를 내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밀한 학문적 업적은 그 자체가 힘 있는 실천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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