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걱정하는 이유

  • 입력 2004년 7월 22일 18시 58분


노무현 정권이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주장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박 대표의 말대로 이 정권이 “창조, 발전보다 나라의 근본을 파괴하고 허무는 쪽으로 가고 있다”면 그런 주장이 나온 배경과 진위를 따져 봐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철 지난 색깔 공세”라고 일축했지만 단순히 여야 정쟁(政爭)의 차원에서 볼 문제가 아니다.

박 대표가 정체성 훼손 사례로 든 의문사조사위의 비전향장기수의 민주화 기여 판정이나, 북한 함정의 북방한계선(NLL) 월선과 관련한 대통령의 군(軍) 질책 등에 대해선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왜 다수 국민의 눈에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위로 비치느냐에 있다. 그런 국민은 모두 수구(守舊) 반동세력이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원인은 이 정권에 있다고 본다. 우리 현대사를 선과 악의 대립의 역사로 보고 과거 들추기를 통해서라도 악은 단죄해야 한다는 잘못된 소명(召命)의식 때문이다. 역사란 영욕(榮辱)과 공과(功過)가 겹치기 마련인데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무오류의 판관(判官)이 되려고 하니 그런 빗나간 의식과 열정 앞에서 누군들 나라의 정체성을 걱정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와 시장경제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될 가치요 정신이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는 헌법을 수호하고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정권은 헌법 수호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상적 민족주의, 기본적인 균형감조차도 의심스러운 도식적 사관(史觀), 주류세력 교체를 위한 역사 해석의 편의주의로 현대사를 자의적으로 재단해 국가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는 정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걱정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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