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성장엔진이 꺼지기 전에…

  • 입력 2004년 7월 22일 19시 36분


당연한 말이지만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호황이고, 성장률이 낮으면 불황이다. 또는 실업률이 늘어나면 불황이고 줄어들면 호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성장률, 또는 실업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성장률, 즉 호황과 불황의 경계가 되는 성장률이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잠재성장률 또는 성장잠재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얼마인가. 통계자료와 모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4∼5% 정도로 보고 있다. 작년에 한국경제가 3.1% 성장했기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고 느낀 것이다. 경제가 금년엔 5%대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는 금년에 최소한 불경기는 벗어날 것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에는 잠재성장률이 8%대였다. 그래서 그때는 두 자릿수 성장률은 돼야 경기가 괜찮다고 여겼고, 6%만 성장해도 불경기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랬던 성장잠재력이 최근에는 그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요즘은 5%만 성장해도 경기가 좋다고 한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5년 뒤가 될지 10년 뒤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0%가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지는 날이고 호황과 불황의 경계가 바로 0%인 상황을 의미한다. 마이너스 성장과 플러스 성장을 반복하면서 1%의 성장에 감사해야 할 날이 올 수 있다.

이것은 결코 이론적인 가능성이 아니다. 바로 일본이 지난 10여년간 그랬다. 그러나 일본은 3만달러 소득수준에서 장기불황을 맞았다.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한국은 1만달러 소득수준에 불과하다. 장기불황을 맞을 때 발생할 높은 실업률과 경제 양극화, 서민생활의 곤궁함은 그야말로 상상하기조차 괴롭다.

한국 경제가 일시적 불경기인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지, 다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아무 의미 없는 부질없는 논쟁이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하든, 암세포가 퍼졌다고 하든 증세는 하나다. 한국 경제는 분명히 중병에 걸려 있고 죽어가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의 문제는 현 정부의 책임은 아니다. 그러나 10여년째 지속되고 있는 성장잠재력의 하강 추세를 막을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경제가 위기니까 어떻게 손 좀 써보라고 말하는 것을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은 난치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이미 국제기구나 국내외 유명 연구기관의 보고서에 성장잠재력을 올릴 처방과 해답이 다 나와 있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서 국내외 투자를 활성화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해서 국민생활과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면 된다. 개방과 경쟁을 촉진해서 사회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과 근로자들이 갈라먹기보다는 건전한 생산 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경제문제에 대한 정치논리의 지배, 정치인의 인기영합주의와 법치주의의 훼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시장경제 원리에 다시 충실하면 된다.

병명도 알고 처방도 있다. 약이 쓰다고 안 먹는 것이 문제다. 눈앞의 갈등과 고통이 두려워 꼭 해야 할 일을 못하는 사회는 미숙한 사회다. 바깥세상이 무섭게 변하는데 우리는 정작 해야 할 일은 놓아두고 수도 이전이니 언론개혁이니 하면서 100년 전처럼 당파싸움과 정적 때려잡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말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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