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세계는 ‘서울’로 기억하는데…

  • 입력 2004년 7월 25일 19시 47분


고교 시절의 일이다.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문제를 냈다. “워싱턴 시민은 ‘워싱터니안(Washingtonian)’, 런던 시민은 ‘런더너(Londoner)’, 파리 시민은 ‘파리지앵(Parisian)’이라고 한다. 그러면 서울 시민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는 사람?”

“….”

한국 사람이 코리안(Korean)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던 기자는 서울 시민을 ‘서울라이트(Seoulite)’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선생님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 있는 외국의 수도 등 주요 도시엔 그 도시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한 표현이 있다”고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 외국인들을 접촉할 기회가 있을 때 ‘서울라이트’라는 표현을 일부러 사용해 봤다. 혹시 사전에만 있고, 실제론 쓰이지 않는 단어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간혹 못 알아듣는 외국인도 있었지만, 서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서울라이트’라는 표현을 무난히 이해했다. 그럴 때면 배운 것을 잘 써 먹었다는 생각과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한 듯한 기분에 가슴이 뿌듯했다.

최근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수도 이전 문제를 보면 주로 수도 이전의 비용과 효용 등에 논의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을 뿐 대한민국의 상징으로서 국제사회에 투영될 수도의 이미지 문제는 뒷전에 밀려 있는 것 같다.

수도는 한 나라를 보여 주는 창의 역할을 한다. 유구한 역사와 현대 문명이 공존하는 서울 대신 새로 지어질 신도시가 수도가 될 경우 외국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하다.

서울은 인구 과밀과 공해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간판 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도시다. 한반도에선 수도로 이만한 곳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이는 북한도 내심 인정하는 바이다.

북한은 1948년 9월 8일 제정한 헌법 제103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首府)는 서울시다”라고 규정했었다. 북한이 임시 수도였던 평양을 수도로 바꾼 것은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1972년 12월 27일 최고인민회의 제5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했을 때였다. 그렇지만 서울에 대한 북한의 콤플렉스는 여전하다고 말하는 원로 역사학자도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서울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당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서울의 세계화’ 작업이었던 셈이다.

정부는 21일 중앙행정기관 중 73개를 신행정수도로 이전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새 수도를 홍보하고, 한국의 수도에 관한 외국의 기존 자료와 정보, 인식 등을 바꾸는 데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인지 지금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외교통상부가 14일 주한외교사절단을 상대로 개최한 ‘신행정수도 건설과 외교단지 건립계획 설명회’에서 “한국 정부가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주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수도 이전이 갖는 대외적 의미와 과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연구하고 분석했는지 궁금하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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