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당이 ‘패가망신’할 수 있다

  • 입력 2004년 7월 26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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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의 ‘패가망신’ 발언은 나라와 정치의 격(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신 의장은 “우리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전면전의 기세로 싸움을 걸다가 패가망신한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많다”고 했다. 노무현 정권의 정체성을 거론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어디가 옳고 그름을 떠나 한마디로 천박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지도자의 말에는 품위와 무게가 있어야 한다. 상대의 비판에 상식적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패가망신’ 발언에는 이런 기본은커녕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오만으로 가득 차 있다. 여당 의장의 인식이 이렇듯 왜곡되고 편협해서야 상생(相生) 정치는 입에 발린 소리일 뿐이다.

여당이 박 대표에게 유신독재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사를 사죄하라고 압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박 대표가 정치적 판단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문제지 ‘연좌제’식으로 매도하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박 대표는 아버지 문제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지 않은가.

야당 대표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정권 비판을 ‘색깔론’이라고 몰아붙이는 것 또한 이성적 논의구조를 닫아버리는 일이다. ‘색깔론’이니 ‘역(逆)색깔론’이니 하는 공방 자체가 이미 폐기했어야 마땅한 흘러간 시대의 유물이다. 여당은 문제를 제기한 야당 대표를 성토할 게 아니라 정권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열린우리당은 어제 “지금은 민생을 챙기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야 할 때”(천정배 원내대표)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당 의장이 ‘패가망신’을 강조한다. 이런 식의 ‘이중 플레이’로는 야당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은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서는 열린우리당이 오히려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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