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오늘은?
2003년 12월 14일. 일본 고치(高知)현 고치경마장은 흥분과 열기로 가득했다. 중앙 레이스에서 밀려났거나 은퇴 직전의 경주마, 혹은 다른 경마장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3류 말이 참가하는 최하급의 지방 레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이곳은 5000명이 넘는 관중으로 북적였다. 멀리 도쿄(東京)에서 온 단체관람객도 있었고 32개 언론사에서 100여명의 취재진도 파견됐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모래를 날리며 뛰고 있는 작고 늙은 경주마에 집중됐다. 단 한번도 승리한 적이 없는 노쇠한 경주마 하루우라라의 100번째 도전 레이스였다. 과연 생애 첫 1승을 기록할까, 아니면 100연패의 위업(?)을 세우게 될까….
○ 언제나 지는 경주마
1996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하루우라라는 서러브레드종 암말이다. 이름 ‘하루우라라’는 화창한 봄날이라는 뜻.
경주마는 네 살을 전성기로 치니 여덟 살인 하루우라라는 은퇴할 나이. 하루우라라는 애초에 ‘달리기는 틀린 말’이었다. 발목이 가늘어 몸집이 작을 수밖에 없었고 폐활량도 떨어졌다. 예민한 성격 탓에 레이스 전에는 여물을 먹일 수 없어 정작 경주에서 힘을 못 썼다.
○ 오늘도, 지다
1998년 데뷔전에서 하루우라라는 꼴찌인 5등을 했다. 하루우라라는 이후 6년 동안 내리, 꾸준히, 줄기차게 졌다. 99연패가 될 때까지 최고기록은 3등.
하지만 월평균 2회꼴로 레이스에 참가한 하루우라라는 성실하다. 뒷심이 딸려 우승은 못해도 반드시 중간에 한 번은 치고 나간다. 온 힘을 다해 뛴다는 얘기다. 기수들은 안다. “기분이 나쁘면 기수를 떨어뜨리려 하거나 우물쭈물 달리는 말들도 있죠. 하지만 하루우라라는 늘 전력 질주를 합니다.”
○ 그래도, 달린다
60연패 무렵 ‘전패(全敗) 행진’ 중인 말 이야기가 경마 중계 아나운서에 의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이 말의 ‘1승’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우승 가능성이 0%에 가까운 하루우라라를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마권을 샀다. 말기 암 투병환자, 명예퇴직 당한 직장인…. 어쩌면 이들은 자신을 위해 경마장을 찾는지도 모른다. 하루우라라는 어느새 삶에 지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되어 있었다.
“희망을 준다는 것, 웬만한 복지정책보다 어쩌면 이것이 더 소중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한 마리 말이 그걸 해내고 있는 것이지요.”
○ 지고도 이긴다
다시, 고치경마장. 하루우라라의 100번째 레이스가 끝났다. 역시, 졌다. 하지만 스탠드를 가득 메운 관중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하루우라라의 100연패는 100회 연속 전력 질주를 의미하므로.
경마장을 떠나며 이들은 말한다. “내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계속된다. 삶이라는 희망찬 레이스가….
추신. 하루우라라는 올 2월 동물로는 처음으로 고치시관광협회로부터 ‘관광 공로자’로 선정돼 표창을 받았다. 상금은 당근 200kg. 하루우라라의 캐릭터는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선정한 ‘2004년 상반기 히트 상품’에 뽑혔다. 한편 하루우라라의 연패 기록은 지금도 계속 경신되고 있다. 2004년 7월 11일 현재 112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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