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경계에서 말한다’…"자유로운 세상 만들어봐요"

  • 입력 2004년 7월 30일 17시 13분


페미니스트인 조한혜정 교수는 지역에 뿌리내린 ‘작은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정치를 바꾸어가는 미래를 꿈꾼다. 사진제공 생각의나무
페미니스트인 조한혜정 교수는 지역에 뿌리내린 ‘작은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정치를 바꾸어가는 미래를 꿈꾼다. 사진제공 생각의나무
◇경계에서 말한다/우에노 치즈코, 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 김찬호 옮김/260쪽 1만2000원 생각의나무

《두 여자가 열 달간 여섯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한일 양국의 페미니스트인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사회학과)와 우에노 치즈코 교수(도쿄대 사회학과). 1988년 한 국제학회에서 만나 벗이 된 두 사람 사이의 편지교환은 일본의 월간지 ‘세카이(世界)’가 기획한 것이었다. 2003년 3월부터 2004년 1월까지 월간 ‘세카이’와 한국의 계간 ‘당대비평’에 함께 실린 이 편지들에서 두 사람은 불안과 공포가 증폭되는 21세기에, 지속가능하며 더불어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를 서로에게 묻고 답했다. 책은 일본의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동시 출간됐다. 》

● 내게는 나라가 없다

현재에 대한 두 사람의 분석은 자신들의 사적 경험에 깃든 사회와 역사의 흔적을 밝히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조한 교수는 “사회에 굴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삶을 사는 여자가 돼라”는 신여성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7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인류학 박사학위 연구주제로 ‘제주도의 해녀’를 현지조사하면서 페미니즘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르크시스트에서 페미니스트로, 다시 노년운동가 장애인운동가로 자신을 갱신해온 일본의 우에노 치즈코 교수. 사진제공 생각의나무

일본의 우에노 교수는 극좌 학생운동세력인 전공투가 도쿄대 강당을 점령했던 69년, 이른바 ‘학생권력’ 시대의 일원이었다. 남자들이 전선에서 철수하고 보수화되어 갈 때 우에노 교수는 여성해방운동에 가담함으로써 다시 ‘일상의 전장’에 나섰다.

성장과정에서 ‘근대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국가적 목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두 사람은 “나에게 조국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통해 ‘자기존엄 회복’을 향한 한 발을 내딛는다.

“국가보다도 내가 더 소중하다. 내게는 이것이 페미니즘의 기본 기(基)다. 국가보다 회사보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나.”(우에노 교수)

조한 교수는 근대와 탈근대가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지금, 약자가 세계화에 희생되지 않는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서는 ‘다(多)중심적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아시아 내지 동아시아지역 중심의 지역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국가의 변경을 넘어선, 그러나 곧바로 세계화로는 가지 않는….”

● 불안의 시대, 페미니스트의 몫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언제나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조응해 왔다는 것이다.

조한 교수가 청소년운동에 뛰어들어 대안학교 ‘하자’를 만든 것은 “엄마는 어떻게 이런 세상에 나를 낳을 생각을 했어?”라는 딸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미혼의 우에노 교수는 늙은 부모를 병간호한 경험을 바탕으로 혈연 없는 사람들이 집에서 간호받을 수 있는 상호부조 운동을 시작했고 페미니스트에서 노년운동가, 장애인운동가로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모두가 지는 게임에 포섭된 상황을 가볍게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함께 식탁에 모여 즐겁게 식사하기, 남의 아이 잠시 맡아 기르기, 행복한 동반여행하기, 이런 운동 같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사회가 소생할 날이 오지 않을까요?’(조한혜정)

‘나는 보살핌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이 굴욕이 아니라 권리이고, 타인을 돌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헌신이 아니라 보상받는 노동이 되는….’(우에노 치즈코)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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