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무대 위에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한다. 애절한 선율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주회장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그런데 어떤 방청객이 몸을 비틀고 입을 틀어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마른기침을 연방 해댄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모이고 연주회는 그것으로 끝나버린다. 그 주인공은 언제나 바로 나다. 이것이 내가 꾸는 악몽의 한 유형이다.
누구든 한번쯤은 참을 수 없는 기침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일이 있을 것이다. 왜 기침을 통제할 수 없을까? 방귀처럼 단지 생리적인 반응일 뿐일까. 혹시 몸속에 침투한 감기 바이러스가 자신의 복제품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숙주인 우리로 하여금 기침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시도 때도 없이 말이다.
자신의 대표저서가 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 혹은 운반자일 뿐”이라는 주장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했던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도킨스가 이번엔 ‘확장된 표현형’이란 개념으로 우리를 또 한번 고민에 빠뜨린다. 유전자가 그 자신의 복제품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개체(운반자)를 고안했다는 주장도 혁명적 발상인데,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유전자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개체들마저도 자신의 운반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너무 과한 주장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 확장된 표현형의 사례는 적지 않다. 그중에는 기상천외한 것도 있다. 예컨대 숙주인 게에 딱 달라붙어서 자기 자신을 단세포 상태로 변형시킨 다음 그 게 속에 잠입하는 조개삿갓의 경우를 보자. 기생자인 조개삿갓은 그 후엔 숙주인 게를 생화학적으로 거세해(만약 수컷이라면) 암컷화한 다음 숙주가 기생자인 자신의 알을 돌보도록 만든다. 기생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숙주에까지 마수를 뻗치는 광경이다. 숙주의 이 어이없는 행동은 음악회의 주책없는 기침처럼 기생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인 셈이다.
이보다 덜 극적이긴 하지만 친숙한 사례들도 있다. 가령, 날도래 유충은 개울 하류에서 잡다한 잔해들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한다. 이는 마치 대합조개의 내용물이 그 조개껍데기에 의해 보호받는 것과 같다. 단지 그 보금자리가 날도래의 몸 일부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날도래 유충의 집은 이런 의미에서 확장된 표현형이다. 또한 비버는 강 속에서 안전하게 이동하려고 주위의 나무를 잘라 댐을 만드는데 도킨스는 이 비버의 댐도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거미줄, 흰개미집, 새의 둥지와 같이 동물들이 만들어낸 인공물들도 모두 자신의 유전자를 더 효율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확장된 표현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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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개체가 집단을 위해 존재한다는 집단주의에도 거부감을 느끼지만 개체가 유전자의 통제를 받는다는 생각에도 불편하다. 문명을 만든 건 집단도 유전자도 아닌 우리 자신, 즉 개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저자의 논리를 인간에까지 적용해 보면 우리의 문화와 문명도 결국 유전자의 확장된 표현형일 수 있다. 저자가 여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는 점이 다소 아쉽지만, 어쨌든 그는 이 책에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못 다 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통해 좀 더 분명하게 유전자의 눈높이로 내려왔다. 원제 ‘The Extended Phenotype’(1999년).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강사·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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