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주인공인 질은 번역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에이다 혹은 아더’의 번역을 맡게 된 그는 현란한 문장으로 가득한 원작을 다 읽은 뒤 느낌을 이렇게 표현한다.
“독자로서 경탄하고 번역자로서 낙담했다”고.
결국 질은 3년5개월 동안이나 원고에 손을 대지 않고, 참다못한 출판사는 번역가가 머물고 있는 먼 B섬까지 직원을 파견해 독촉한다. 순박한 섬마을 사람들은 출판사로부터 닦달당하는 질을 보다 못해 번역을 돕겠다고 나서며 소동이 시작된다….
‘두 해 여름’은 번역가를 주인공으로 삼아 번역의 어려운 점, 번역에 대한 원작자의 불만, 출판사와의 관계 등 번역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쾌하게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번역에 대한 묘사 한 대목.
“번역은 외과수술에 비할 수 있을 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번역가는 문장을 가르고 의미를 잘라내며 언어유희를 이식하고, 큰 것을 잘게 부수며 끊어진 것을 동여맨다. 때로는 정확성을 기하려다가 오히려 본뜻을 해치고 왜곡하기도 한다….”
프랑스어로 ‘번역하다(traduire)’란 동사는 ‘건너게 해 주다(traduc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번역가는 ‘언어의 나루를 건너게 해 주는 뱃사공’인 셈. 고마운 존재이지만 사실 번역가는 ‘잘 해야 본전’인 직업이다. 매끄럽게 번역된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번역가를 떠올리고 감사하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반면 어색한 표현을 접하면 대뜸 번역가부터 욕하기 십상이다.
이는 원작자도 마찬가지. “번역가가 작품을 잘 살렸다”는 작가보다 “번역가가 내 걸작을 망쳐 놨다”는 작가가 훨씬 많을 테니까. 소설 속 나보코프도 편지를 보내 불만을 터뜨린다.
“그 번역은 날림으로 된 조잡한 작품이었고, 실수투성이에 생동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데다, 너무나 밍밍하고 시르죽은 영어로 서툴고 답답하게 옮겨진 터라 나로서는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은 익살스러운 내용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게 읽힌다.
주인공인 질은 프랑스의 실존 번역가인 질 샤인이 모델. 질이 머물며 번역을 한 B섬은 이 소설 출간 후 유명 관광지가 된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브레아섬이다. 소설 속에서 질이 번역한 ‘문제의 소설’인 ‘에이다 혹은 아더’는 샤인이 실제 번역했던 작품. 까다로운 작가 나보코프 역시 ‘롤리타’로 잘 알려진 실존 작가이며 번역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은 편지 역시 실화다.
나보코프와 달리 이 소설의 저자인 오르세나는 번역가를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서가에 꽂힌 책의 반은 번역가들 덕분에 내게로 온 것이다. 나는 번역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번역가는 우리로 하여금 언어의 바다를 건너 신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유머와 위트로 가득한 이 책을 덮으며 이 말을 국내 번역가에게 되돌린다. ‘Deux ´Et´e’ (1997년). 이 서평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송상아씨(연세대 생활디자인 4년)가 참여했습니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