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당시 OB 베어스의 정수근(27·롯데 자이언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홈런을 치면 내가 방망이 하나 사주겠다”고.
1m78, 78kg으로 야구선수치곤 작은 체격의 정수근은 1995년 프로에 입단한 뒤 홈런이 없었던 대표적인 ‘똑딱이’ 타자. 그를 자극하기 위해 한마디 던진 것이었다.
그해 6월 23일 잠실야구장. 3만 관중이 들어찬 라이벌 LG전에서 정수근은 오른쪽 담장을 넘겨 드디어 프로 첫 홈런을 장식했다. 약속대로 그에게 방망이를 선물했다.
“롯데 살리려고요.”
지난해 11월. 공격 수비 주루의 3박자를 두루 갖춘 정수근은 6년간 40억6000만원이라는 역대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사상 최고액에 도장을 찍었다. 삼성을 뿌리치고 롯데와 계약한 이유를 묻자 그는 “썰렁한 부산 사직구장을 예전처럼 꽉꽉 채우고 한국 프로야구에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롯데로 간다”고 했다. 대답이 신선했다.
그는 기자가 예전에 사준 방망이 얘기도 꺼냈다. “방망이 선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아직 안 잊혀진다”며 고마워했다. 마음이 뿌듯했다.
“죄송해요.”
29일 밤 전화를 걸었다. 정수근은 잔뜩 흥분돼 있었다. 정황을 설명하는 그는 “나도 잘못해 할 말은 없지만 그쪽에서 먼저 싸움을 걸었는데 억울한 부분도 있다”며 하소연했다.
26일 새벽 나이트클럽에 놀러 갔다가 나온 정수근은 취객 3명과 싸움이 붙었다. 흥분한 상태에서 자동차에 있던 방망이를 휘둘러 2명을 맞혔고 경찰서로 끌려갔다. 정수근은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음주운전과 폭행 사실을 구단에 알리지 않고 합의를 시도했으나 상대방이 4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요구하는 바람에 합의가 깨진 뒤 언론에 상세히 공개됐다.
기자가 기억하는 정수근은 집안 빚 때문에 월급을 차압당하긴 했어도 늘 사람을 즐겁게 하고 의리가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대박’을 터뜨린 뒤 1억원짜리 고급 스포츠카에 잦은 유흥업소 출입, 음주운전에 방망이를 휘두르는 폭행까지….
‘벼락스타’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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