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
그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재앙이었다. 도무지 ‘국가적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유럽의 잡동사니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세금문제와 같은 저주스러운 일”을 혐오했다.
그는 게으르고 심약했으며 사생활은 문란했다.
이 ‘놀기 좋아하는 촌뜨기’는 오하이오주의 ‘메리언 스타’지를 인수하면서 정치판에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발행인 겸 편집인이었다. 1891년 이혼녀인 플로렌스 킹과 결혼했는데 야심만만한 부인은 신문 경영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1915년 상원에 진출했으나 그가 한 일이라고는 적(敵)을 만들지 않은 것이었다. 적을 만들 만큼 분명한 입장을 취한 적이 없었다.
일찍이 그의 부친은 말했다. “네가 계집애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야. 도무지 ‘노’라고 말할 줄을 모르니….”
1920년 그는 주변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대통령후보에 지명됐다. 이유는 단 하나. 그는 대통령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용모와 풍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용도로 쓰였다. 그는 이때 이미 복수(複數)의 불륜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명은 그의 오랜 친구의 아내였고, 다른 한 명은 30년 연하의 금발미녀였다. 그는 ‘조카’라고 불렀던 금발미녀와의 사이에 7개월 된 사생아를 두고 있었다.
그해 여성이 처음 투표에 참여한 선거에서 그는 6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백악관과 정부 요직을 고향인 오하이오의 동료들과 친인척들에게 고루 분배했다. ‘오하이오 갱(The Ohio Gang)’은 무능했으나 욕심은 많았다. 잇따라 독직(瀆職)사건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스캔들이 곪아가면서 지쳐갔다. 1923년 여름 부인과 함께 알래스카 여행을 떠났다가 급사하고 만다. 의문사였으나 부인은 끝내 부검을 거부했고, 이내 ‘독살설’에 휘말린다.
남편을 스캔들의 수렁에서 건지기 위해 부인이 살해했다는 얘기도 있고, 그의 방탕함이 비극을 자초했다는 설도 있다. 자살설도 떠돌았다.
미 정치사는 그를 이렇게 자리매김한다. ‘절대로 되지 말았어야 할 대통령!’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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