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근/‘서울 비하’는 누워서 침뱉기

  • 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52분


정부가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광고물에 의하면 서울은 베이징과 멕시코시티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국이나 멕시코보다 못해야 한다. 어느 연구소의 자료를 근거로 경쟁도시들을 비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자긍심은 지켜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삽화라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굳이 한국의 얼굴인 서울을 왜소화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서울의 경쟁력에 대한 가감 없는 냉철한 인식은 필요하지만 서울을 비하하는 것은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아니다.

▼일방적인 수도이전 광고▼

수많은 시민이 타는 지하철을 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극장에 가면 일방적인 정부 홍보내용을 담은 ‘대한뉴스’를 어쩔 수 없이 봐야 했던 과거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또 국정홍보 자료를 제공하려면 서울의 ‘삶의 질’이 세계 30대 도시 중 최하위라는 정보뿐만 아니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03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35위로 추락했다는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더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된 상황에서 서울시와 상의도 없이 그런 광고를 게재했다는 것 자체가 관료적 발상이다.

외국 기업이 투자처로 서울을 외면하고 베이징을 선택한다는 광고 내용도 문제가 있다. 외국 기업이 외면하는 것은 ‘서울’이 아니고 ‘한국’이다. 지하철 광고에 이어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도 자체 홈페이지에 게재된 수도 이전 홍보자료를 통해 국내 기업의 중국 러시와 외국인의 투자 기피가 서울의 과밀화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수도권에 과밀화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과밀화로 돌리는 것은 ‘견강부회’다. 이런 논리라면 최근의 기업투자 부진 원인도 수도권 과밀화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이동은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찾아가는 ‘발로 하는 투표’ 행위이다. 최근 들어 국내 기업의 투자와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 부진한 것은 규제와 노사관계 등 리스크 면에서 우리의 ‘기업 환경’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 이전은 국운을 좌우하는 백년대계이다. 기업 전략과 컨설팅은 실패해도 기회가 있지만, 국가전략과 국가적 컨설팅은 ‘필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수도 이전이 노무현 정부가 구현하고자 하는 동북아 경제중심과 국가 균형발전에 진정으로 부합되는지, 수도 이전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는지를 주도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근현대사를 통해 수도를 옮겨 성공한 외국의 사례는 많지 않다.

국가 균형발전은 옳은 정책방향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 비약이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과 각 부문에 분산시켜야 균형발전이 된다. 수도를 옮긴다는 것은 ‘권력지’의 이동을 전제로 한 것으로, 전국적 균형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21세기 국가경쟁력의 요체는 도시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서울과 수도권을 비하할 게 아니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브랜드는 쉽게 축적될 수 없는 무형의 ‘관계자본’이다. 수도 이전은 서울의 브랜드 파워를 훼손시킬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자산의 유실을 의미한다. 글로벌 500대 기업의 아시아지역본부, 기술개발 및 디자인센터 등이 서울에 유치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은 확충될 수 없다.

▼도시경쟁력이 국가경쟁력▼

정부는 수도 이전 반대론을 ‘정권 흔들기’로 몰아세울 만큼 수도 이전에 집착하고 있다. 지하철 광고건도 수도 이전을 위한 정부의 집착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수도 이전만 되면 모든 것이 풀린다는 식의 정책인식은 위험하다. 한 방향에만 ‘올인’하는 정책의 결과는 치명적인 국가경쟁력 상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